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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소라빵 한 개, 오직 나만의 것

입력 2021.11.24 12:39

수정 2021.11.2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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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붕어빵을 꼬리부터 무는 사람과 머리부터 무는 사람. 당신은 어느 쪽인가. 나는 항상 머리부터였는데 요즘은 가끔 꼬리부터 먹어본다. 소라빵은? 통통한 윗부분부터 시작할지 꼬리부터 베어 물지 매번 고민이 된다.

문제의 소라빵과는 여름 끝 무렵 처음 만났다. 지난해 고기를 끊은 데 이어 올 초부터 동물의 알과 젖까지 식단에서 덜어냈기 때문에 웬만한 빵집에선 살 게 거의 없다. 자연히 비건 빵집을 찾아 나서는 게 살림 목록에 추가됐다. 짬이 나면 여기저기 다녀보며 단골로 삼을 데를 물색했다. 그러다 집에서 멀지 않은 한 빵집을 발견했다. 식빵부터 피자빵, 크림빵까지 없는 게 없었다. 모두 우유와 버터, 계란을 쓰지 않고 만든다.

먹다보면 여기저기 묻기 마련이다. 성산동흥염소

먹다보면 여기저기 묻기 마련이다. 성산동흥염소

다슬기 모양을 하고 두꺼운 초코 모자까지 덮어쓴 채 냉장고에 들어앉은 그를 첫 방문 때는 못 본 체 했다. 설탕을 덜 먹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데, 달콤한 소라빵 한 개면 하루 치 당 섭취량을 한 방에 날릴 것만 같았다. 식사용 빵만 사서 냉동해 두고 먹다가 어느 날, 선물을 주는 기분으로 소라빵도 하나 샀다.

과연 실망시키지 않는 맛이었다. 여태껏 맛본 그 어떤 소라빵보다 입에 잘 맞았다. 매일 하나씩 먹고 싶은 충동을 차단하기 위해 규칙을 정했다. 생리 때만 먹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빵집에 들르는 것도 달에 한 번 정도이니 꼭 알맞다. 빵을 살 때 소라빵도 한 개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기다린다. 머리가 멍해지고 짜증이 폭발하는, 진통제의 축복으로 겨우 나야하는 한 달 최악의 날을 기대할 이유가 하나는 생긴 셈이다.

지난달 마의 구간은 좀 견딜 만 했던 모양이다. 냉동실을 열지 않고 생리 기간을 넘겼다. 대신 큰 손님을 치른 날 이 빵을 꺼냈다.

직접 만든 식사를 부모님께 대접하는 일은 한 해 다섯 번도 안 되는 것 같다. 가까이에 살며 늘 얻어먹기만 한다. 나와 동생 둘이 사는 집 냉장고는 사실상 엄마의 관할권에 있다. 내 취향의 음식을 부모님께 선보이고 싶을 때가 많지만, 귀찮을 뿐 아니라 30년 넘게 식단을 관장해온 프로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가는 게 겸연쩍어 자꾸 미루게 된다.

그날은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하게 설쳤다. 고기도 해산물도 넣지 않은 채소 백짬뽕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전날부터 ‘맛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잠들기 직전, 냉장고에 구르는 굴소스가 생각났다. 그의 힘을 빌린다면 어떤 요리가 나와도 아주 맛없다곤 못할 것이다. 비로소 마음이 푸근해져 말린 표고만 물에 담가놓고 잠에 빠졌다.

아침 운동을 다녀오자마자 채소를 썰기 시작했다. 양파, 파, 마늘, 배추, 각종 버섯을 수북하게 썰고, 팔이 아플 때까지 볶아야 단맛이 난다는 양파를 불에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정신없이 조리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열심히 썰어 볶았다. 성산동흥염소

열심히 썰어 볶았다. 성산동흥염소

모두 앞에 한 그릇씩 놓고 잔뜩 긴장해 가족들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모두가 열심히 먹어 주었다. 엄마는 내 성의가 갸륵했는지 연신 “뭘 넣고 만들어서 이런 맛이 나냐” “깔끔하고 맛있다” 추켜세웠지만, 동생과 아버지는 딱히 호응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식사 말미에 “요리도 하다 보면 다 자기 요령이 생기는 법”이라는 오묘한 말을 남기셨다.

가족들이 모두 떠난 후 집에 혼자 남아 한바탕 설거지를 했다. 냉동실의 소라빵을 꺼냈다. 맛있는 건 웬만해선 나눠 먹지만, 이건 오직 나만의 것이다. 꼬리를 손으로 잡아 살살 뜯으니, 한 덩어리를 이루었던 빵이 나선을 그리며 술술 풀려나왔다. 손에든 입에든 코에든 반드시 초코크림이 묻게 마련이지만 소라빵과 나, 둘만 있으니 상관없다.

보드라운 빵과 녹진한 크림의 비율을 미세하게 조정해나가며 음미했다. 빨리 다음 달 소라빵 먹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엔 머리부터다.

성산동흥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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