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룬펠스와 브룬펠시아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정보란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때로 글보다 그림이 낫다. 동식물에 관한 정보와 감흥도 마찬가지다. 인기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사진과 동영상 없이 내레이션 위주로 동물의 행태를 설명했다면, 이토록 장수 프로그램이 되었을까. 동식물도감도 정확한 사진과 그림이 곁든 것에 손이 먼저 간다. 시각적 이미지가 그 내용을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유럽에서 중세 이전까지 식물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 활자로 전달되었다. 간혹 삽화가 포함되기도 했지만, 화가가 직접 그린 오직 한 장의 작품에 불과했다. 책을 여러 권 만들기 위해서는 필사는 물론 그 삽화를 일일이 다시 그려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릴 때마다 원화의 정확성은 떨어지고, 화가마다 자신의 화풍을 가미하여 원화의 이미지가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바로 목판화였다.

15세기경에 발명된 목판화는 ‘종이로 된 정원’인 식물도감을 여러 부 인쇄할 수 있어 식물학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감에 제대로 된 목판화를 수록한 사람은 독일 식물학자 오토 브룬펠스였다. 그가 1530년에 펴낸 <살아있는 식물 이미지>는 사실적이고 생생한 삽화가 포함된 본격 식물도감이라 할 만하다. 삽화를 그린 사람은 브룬펠스 본인이 아니라 한스 바이디츠였다. 그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제자로 실사에 가까운 삽화를 제작하였다. 사실주의에 투철한 바이디츠의 식물 그림은 기존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마치 섬세한 펜화를 보는 듯 외곽선이 뚜렷하고 선명하여 목판 제작에도 수월했으며 똑같은 삽화를 수백 장씩 복제할 수 있었다. 브룬펠스의 책은 전 유럽에 퍼져나가 모든 식물학자가 정확히 동일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생물분류학의 아버지 린네는 브룬펠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를 ‘식물학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브룬펠시아 재스민이란 꽃은 린네가 그를 기리기 위해 붙여준 속명이다.

브룬펠스의 식물도감이 출간되기 전인 15세기 초, 조선의 강희안은 <양화소록>을 펴냈고, 뒤를 이어 <산림경제> <화암수록> 등 식물에 관련된 여러 책이 출간되었다. 만약 이런 책에 그림이 함께했더라면 후학들에게 또 다른 영감을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선 후기 시서화 삼절이던 강세황이 “산수 표현에는 시보다 기행문이, 기행문보다 그림이 낫다”고 한 것도 이를 두고 이른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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