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죽으면 우리가 서로의 마누라라는 걸 누가 알아줄까?” 30대 성소수자 커플 맑음과 진기는 같이 산 지 7년째 되던 해에 차를 샀다. 부부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운전자 제한 없음’을 선택했더니 1.5배가 비쌌다.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아직 버거운 이들은 노후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고민을 한다. 나이가 들면 더 아플 일이 많아질 텐데 중요한 의학적 결정을 함께 내릴 수 있을지, 같이 산 집을 파트너에게 어떻게 온전히 남겨줄지가 걱정이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는 지난 29일 ‘성적소수자의 나이듦에 대한 첫 번째 포럼’을 열었다. KSCRC는 지난 10월18일 성소수자 508명을 대상으로 노후인식 조사를 한 뒤 그 결과치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0년 대국민 조사 결과와 비교했다. 홀릭 KSCRC 대표는 “성소수자가 나이듦에 대해 상상하거나, 어떻게 나이 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할 때 롤모델이 부족하다. 성소수자의 나이듦, 노후준비, 죽음, 장례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취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조사 결과 ‘노후 준비가 필요하다’는 응답은 93.7%로 대국민 조사(92.6%)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노후 준비 지원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선택 가능)에 성소수자가 주거(82.3%), 소득(71.5%), 돌봄을 포함한 건강(57.1%)을 답한 비율이 높았다. 대국민 조사에서 돌봄을 포함한 건강(69.7%), 소득(63.1%), 고용 및 일자리(47.6%)를 꼽은 것과 차이가 난다.
성소수자라서 노후에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65%가 ‘더 불안할 것’이라고 답했다. ‘차이가 있진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31%, ‘성소수자라서 더 괜찮을 것’이라는 대답은 4%에 불과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해 도움이 되는 법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는 25.2%가 동반자법과 가족구성권을 꼽았다. 이어 동성결혼 법제화 22.7%, 차별금지법 13.7% 순이었다.
성소수자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장 걱정되고 두려운 것을 묻는 질문에 ‘나를 돌봐줄 가족, 친척, 친구 등 지인이 거의 남지 않을까봐’라는 응답이 38.1%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권 향상이 되지 않아 나이들었을 때도 성소수자라서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일까봐(29.9%)’와 ‘가난하거나 몸이 아플까봐 걱정이지 특별히 성소수자라서 더 불안한 건 없다(26.0%)’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성소수자라서 병원에서 마음 편하게 치료받지 못할까봐’라는 응답은 트랜스젠더퀴어(18.1%)가 시스젠더(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동일한 사람, 9.0%)의 두배였다.
한채윤 KSCRC 활동가는 “대국민조사와 성소수자 대상 조사에서 같은 질문에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는 시스젠더, 이성애자, 기혼을 중심으로 노후 정책이 짜여질 경우 성소수자 국민은 그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후에 가장 도움이 될 법으로 동반자법과 가족구성권 인정법이 가장 많이 꼽혔다”면서 “응답자들이 성소수자들에게만 적용되는 혜택보다는 이성애중심주의와 정상가족주의를 깨는 법을 만들어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