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일요일 저녁 9시. 입이 궁금해 냉장고를 열었다. 식단관리를 하고 있어 칼로리 높은 음식을 먹긴 부담스러웠다. 점심때 먹은 결혼식 뷔페 음식 때문에 속도 좋지 않았다. 주말 저녁을 즐기면서도 살찔 걱정 없는 ‘적당히 건강한 음식’ 없을까. 그때 먹다 남은 표고버섯 3개가 눈에 들어왔다. 버터에 표고버섯을 구워 맥주 한 캔과 먹어볼까? 천잰데?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향긋하게 올라오는 버터 냄새에 기분이 좋아졌다.
타협의 산물이었던 그날의 표고버섯. 그러나 식사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도화동찹쌀걸
구운 표고버섯 3개를 해치우는 데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빈 접시를 내려보며 뭐라 말할 수 없는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분명 맛은 있었지만 뭔가 2% 부족했다. 탄수화물! 그렇게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사람처럼 냉장고를 뒤적거리다 냉동만두 한 움큼을 집어 들었다. 딱히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애매한 타협을 시도했다가 말 그대로 ‘입이 터져버렸다’. 건강한 다이어트를 하자는 결의는 기름기 머금은 탄수화물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만두를 해치우고 이성이 돌아오자 감정의 격변이 찾아왔다. 왜 먹었지? 참을 걸…. 처음엔 죄책감이 들다가 그다음엔 심술이 난다. 아니, 주말에 캔맥주 한 잔도 마음 편히 못 먹는 삶이 무슨 의미야?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식단 조절을 하는 걸까? 이 대목에 이르면 나의 자괴감은 절정에 달한다. 익명을 빌어 고백하지만, 내가 음식을 참는 이유는 사실 ‘살이 찔까 봐’다. 나는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몸 이미지가 착취적이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쓰지만,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나를 기꺼이 끌어안을 정도의 용기는 없는 사람이다.
어디까지가 나의 욕망이고 어디까지가 사회의 욕망일까. ‘건강한 다이어트’라는 그럴듯한 수사는 내가 나에게 물어야 할 질문을 회피할 수 있게 했다. 살을 빼려고 운동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긍정적인 변화도 많았다. 예전보다 체력이 좋아졌고, 영양적으로도 더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게 됐다. 뜻대로 되지 않는 많은 일들과 달리, 몸은 내가 노력한 만큼 정직하게 달라졌다. 그 변화를 지켜보는 게 좋았다. 헬스장에 붙은 바디프로필 사진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근사한 몸이 아니라, 그 몸을 얻기까지의 의지력이 갖고 싶었다.
건강하게 먹으려는 노력의 흔적. 도화동찹쌀걸
하지만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질수록, 내가 세운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도 커져만 갔다. 음식에 대한 죄책감과 두려움이 생겼다. 계획에 없던 폭식을 한 날엔 다음날엔 음식을 덜 먹거나, 더 운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은 식욕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내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징벌’이었다. 트레이너는 ‘폭식을 해도 동요하지 않고 루틴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제자리걸음만 하는 내 몸을 온전히 사랑하는 법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유명 운동 유튜버가 찍은 다이어트 고민 상담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상담을 신청한 이들의 대부분이 식이장애를 앓고 있었다. 절식과 폭식을 반복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 버린 젊은 여자들. 댓글 창엔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트위터에서 ‘프로아나’(거식증을 동경하며 음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 계정을 볼 때도 마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개말라’가 되고 싶은 10대 학생들은 열흘 동안 꼬박 굶은 자신을 대견해했다. 그러다 인간의 본능을 따라 음식을 먹으면 ‘이 정도 의지로 네가 무엇을 하겠냐’며 스스로에게 폭언을 퍼붓는다. 날카롭게 날이 선 그 말들 속에서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절박함을 본다.
그 절박함이 남 일 같지 않은 나는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마른 몸을 이상화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살이 찐다고 해서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며칠씩 음식을 참을 정도의 의지력이 있다면,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회복력도 분명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내 조언 역시 반쪽짜리다. 당장 나부터도 마른 몸을 숭배하는 이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까 말이다.
이런 음식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날도 있다. 도화동찹쌀걸
모순덩어리인 스스로가 싫어지려 할 때 나는 사회적으로 ‘학습한’ 결론을 주문처럼 되뇌인다. 그냥 내 마음 편한 게 최선이야, 맥주 먹고 싶으면 먹어도 괜찮아, 배 나와도 괜찮아, 내가 나에게 져도 괜찮아…. 하지만 그러다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면 어떡하지? 두려움은 잠시 몸을 숨길 뿐,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그 두려움이 나를 해칠 만큼 커지지 않게 ‘마음의 근력’을 기르는 것이 나의 숙제다.
도화동찹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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