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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입력 2021.12.02 03:00

수정 2021.12.0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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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에 출연한 댄서 아이키를 처음 알게 된 건 한 트윗 타래를 읽으면서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나자마자 방송에서 아이키를 ‘유부녀’, ‘엄마’로만 호출하는 게 무척 아쉽다는 내용이었다. 아이키가 누군지 몰랐지만 방송의 접근 방식이 훤히 그려지는 듯했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비혼 인터뷰이로 방송에 나갔을 때였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다른 말을 유도하는 것에 당황했다. 보아하니 돈도 없고 집도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내용의 코멘트를 원했지만, 끝까지 기싸움을 하면서 원하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촬영이 끝나고 함께 있던 동세대의 여성이 사실은, 하고 운을 떼며 ‘윗선’에서 비혼을 너무 ‘미화’하지 말라고 정해 뒀다고 말해 줬다. 그때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전형적인 이미지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깨달았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내가 불쌍하게 그려지고, 제도적으로 지원해서 결혼에 안착시켜야 하는 존재로 취급받은 게 충격이었다.

기혼 유자녀 여성도 만만찮게 전형화된다. ‘힙’하고 ‘영’한 이미지를 셀링해야 하는 댄서가 고정관념과 싸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이키를 검색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키는 어디서나 기대를 박살내고 있었다. 좌우명이 “나는 오늘만 산다”인 아이키의 스타일링과 행동, 말투는 모든 걸 헷갈리게 한다. 아이키의 크루 ‘훅’은 전원이 여성인데, 소위 ‘남성’적인 춤과 ‘여성’적인 춤의 스펙트럼이 있다면 이들은 그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즐긴다. 아이키는 어머니 스테레오 타입과도 한참 멀다. “어른 되면 다 해야 되니까 숙제 안 해도 된다”고 딸에게 말해 버린다. 대신, 꼭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라고 얘기한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면 당연하게도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때 필요한 자원은 결혼 가족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어져 왔다. 그 고정관념이 여성들의 등을 자주 떠밀고, 떠밀린 여성들도 결국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고 산다.

그러나 아이키를 통해 입문한 <스우파>는 말 그대로 ‘관계성 맛집’이었다. 47명의 여성 댄서가 서로 경쟁하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모습에 감동의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지방에서 올라와 늦게 활동을 시작해 외로웠다는 아이키 역시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후속 프로그램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 고군분투한 선배들이 아래 세대에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 자원을 아낌없이 나눠 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의 비혼은 혼자 버티는 비혼이 아니다. 동시에, 누군가 결혼을 택한다 해도 그것은 사회의 고정관념을 따르며 결혼 안에서만 사랑과 관심, 자원을 얻을 수 있단 뜻이 아니어야 한다. 결혼을 기준점으로 삶의 장르가 로맨스와 비극으로 바뀌어 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더 자유롭게 관계맺고 마음껏 사랑하며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져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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