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발표는 ‘지난달 3.7% 상승’…실제론 “10% 이상 올랐다”
공식 산출에 포함되는 품목별 가중치와 개인별 소비 성향 달라
자산가격 변동·소득 수준별 소비 실태 감안한 산출 방식 필요
서울 구로구에 사는 이모씨(24)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려다 가격표를 다시 보게 됐다. 2000원으로는 페트병(500㎖)에 담긴 탄산음료 하나 고르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가끔 물건을 사러 마트나 편의점에 갈 때마다 가격이 오르는 것 같다”며 “뉴스에서는 물가가 3% 올랐다고 했는데 체감상으로는 그보다 훨씬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얼마 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한 곳의 가격이 오른다는 뉴스를 보고 구독료를 아끼기 위해 아이디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찾았다.
■ 소비자물가, 어떻게 계산하나
석유류와 외식비, 집세, 농축수산물 가격 등 모든 품목의 가격이 일제히 오르면서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9년11개월 만에 사상 최고치인 3.7%를 기록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이보다 훨씬 높다. 당장,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가공식품 가격 오름폭을 비교해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가팔랐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농심 신라면 가격은 지난 8월 7.6% 올랐고 오뚜기 진라면(12.6%), 스낵면(11.6%) 등은 두 자릿수 인상률을 보였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지난 10월부터 우유제품 평균 가격을 5.4% 올리며 인상 대열에 동참했다.
외식비도 오름세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을 보면 올해 10월 서울 지역 기준, 대표 외식 품목 8개 가운데 냉면(7.3%), 비빔밥(5.3%), 김치찌개(5.1%) 등 7개 품목의 가격이 1년 전보다 5~7%가량 상승했다.
체감물가와 소비자물가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통계청이 소비자물가 산출에 포함하는 품목과 비중, 또 각 개인이 가중치를 두는 소비 품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는 여러 상품의 가격을 종합해 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해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는 월평균 소비지출액 중 1만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481개 품목을 선정한 뒤 상품별로 중요도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반면, 체감물가는 자주 사는 상품들의 가격변동을 소비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개인마다 주로 소비하는 상품 구성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체감물가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집밥을 주로 해먹는 주부라면 농산물 소비에 돈 쓸 일이 많다. 지난달 채소(7.3%) 가격이 올라 체감물가가 더 높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 주류 및 담배(-1.2%) 지출 비중이 높은 1인 가구였다면 체감 물가는 상대적으로 낮다.
■ 자가주거비 반영·소득별 지수 제안도
그러나 이 같은 차이를 고려해도 현재 물가 지표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자주 거론되는 항목은 주거비다.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지표에는 전·월세 등 임차 가구만 포함된다. 자가주거비를 반영한 보조지표를 내놓고는 있지만 실제 주거비 부담을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전세와 월세 계약이 실제 이뤄지는 가구에 한정하지 않고 조사 대상인 전국 38개 도시의 아파트와 일반주택 1만1000가구의 평균을 내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3.2% 상승했지만, 집값 상승 기조에도 자가주거비 포함지수는 2.9% 오르는 데 그쳤다.
따라서 전문가들도 물가 통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 12일 열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한 위원은 “미국과 같이 자가주거비 항목을 포함하고, 우리나라 특유의 관리물가 항목을 제외한 뒤 소비자물가지수를 산출하면 물가 오름세는 지금보다 상당폭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위원은 “자가주거비 항목의 경우 우리도 미국과 같이 소비자물가지수에 적절히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가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보험은 물론 기업 간 대금 결제 등에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변동성이 큰 자산가격을 물가지표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한 연구가 필요하다.
체감 물가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소득별 물가지수’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소득 수준별로 구매하는 품목과 빈도가 다른 만큼 계층별로 물가를 지수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코로나19 이후 소득계층별 물가 상승률 차이’를 보면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0%로, 소득 5분위보다 0.94%포인트 높았다. 저소득층의 소비지출에서 비중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물가가 더 많이 오른 데 따른 결과였다.
소비지출 중 구성비가 저소득층에서 더 큰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는 작년 1월부터 올해 9월 사이에 11.60%나 급등한 반면, 고소득층에서 지출비중이 더 큰 ‘교육’은 오히려 2.37% 하락했다.
- 경제 많이 본 기사
통계청도 소득별 물가지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현행 방식으로 소득분위만 나누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금도 품목별 가중치를 계층별로 차등화할 수 있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한다”며 “계층별로 품목부터 차별화해야 하는데 그만큼 예산과 인력 확보가 뒤따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