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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나의 평화가 아니다

2015년 8월20일 목요일 오후, 경기 연천군 일대에 커다란 굉음이 몇 차례 일었다. 북한군의 포격이었다.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졌고, 내가 근무하던 연천 부대에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포탄이 먼 곳에 떨어졌음에도 그 소리가 부대 담벼락을 넘어 전해졌고, 다들 혼비백산한 가운데 경계태세를 갖추었다. 며칠 동안, 당장 출동이 가능한 상태로 대기하며 포탄 피격을 대비해 부대 막사에 갇혀 있었다. 불안과 공포가 모두의 어깨를 짓눌렀고, 그 와중에 괜찮을 거라느니 자기가 먼저 도망칠 거라느니 가벼운 위안과 농담이 허공을 오갔다.

최성용 청년연구자

최성용 청년연구자

그 시각 나는 휴가 중이었다. 집에서 속보로 소식을 접했다. 온갖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동료 중 누가 다치지는 않았을까. 만약 전투가 벌어진다면 나는 부대로 복귀해야겠지. 차라리 탈영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동료들에게 미안하지 않은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 에 우울하고 무기력한 휴가를 보내야 했다.

휴가 중 불안과 두려움이 가슴 한쪽에 들어앉은 상태로 거리에 나가 보면, 사람들은 평소처럼 전철과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저녁이 되자 다들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웃고 있었다. 사람들의 일상은 그대로였고 그러나 나와 내 동료들은 전혀 다른 세상에 놓여 있었다. 전쟁의 불안을 실감하는 나의 세상은 거기에 없었다. 휴가가 끝나 부대에 복귀하여 동료들의 후일담을 들으면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강제로 끌려가 총을 들어야 했던 남성들의 억울함에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휴전은 종전이 아니다. 여전히 전쟁 상태에 놓인 나라에서 전쟁 위협의 스트레스는 복무 중인 군인들에게 집중된다. 사람들은 전쟁 위협을 망각한 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희생을 전가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잊어버린다. 전쟁과 분단이라는 모순이 모두에게 평등하진 않은 것이다. 나는 그래서 소수에게 희생이 집중될 모병제를 손쉽게 대안이라 여기는 것도 마뜩잖다.

평화를 말하는 정치권은 이 전가된 희생엔 관심이 없다. 강경한 대응만이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직접 전쟁을 겪지 않을 상류층이다. 그들의 평화는 소수만의 평화다. 평화체제와 통일을 말하는 정치인들 역시 “통일은 대박”처럼 북한을 돈벌이 대상으로 보는 노골적 욕망에서 별로 자유롭지 못하다. 두 평화 담론 모두 강제로 징집돼 2년간 총을 들어야 했던 나 같은 사병을 위한 평화는 아니다.

내가 있던 전방 육군 부대에는 사병의 절반 이상이 대학 미진학자였다. 사회의 하층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자신을 위한 평화의 언어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전쟁 나면 나는 탈영할 거야” 따위의 내밀한 고백은 정당한 평화의 언어로 취급될 리 만무했다. 그런 이들을 위해 정치는 평화가 아니라 혐오와 적대로 불만을 해소하고자 한다. 젠더 갈등을 조장하며 억울함을 애꿎은 여성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럴수록 군대 내 성폭력 문제는 목소리를 잃는다. 결국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전쟁의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다른 이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반복된다. 여기에 무슨 평화가 있을까. 그건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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