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민
법원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집행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에서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해당 과목 응시 수험생 6500여명에 대한 성적표 발송을 보류하기로 했다. 16일부터 시작되는 대입 수시전형과 정시전형 등 해당 학생들의 입시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수험생과 입시전문가들의 거듭된 문제제기에도 “조건이 불완전하더라도 변별력을 갖춘 문제”라며 외면했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응도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평가원은 9일 법원의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이 나온 뒤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생들에 성적 통지를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번 수능에서 생명과학Ⅱ 과목에 응시한 수험생은 모두 6515명이다. 생명과학Ⅱ는 과탐Ⅱ 과목중 가장 응시생이 많은 과목으로 지구과학Ⅱ 3570명, 화학Ⅱ 3317명, 물리학Ⅱ 3006명보다 월등히 많다. 과학탐구Ⅰ과 과학탐구Ⅱ를 반드시 응시해야 되는 대학은 서울대, 울산과기원, 한국과학기술원 등이고, 한양대, 단국대 의예·치의예·약학과, 광주과기원, 대구경북과기원 등에서 가산점을 준다. 때문에 입시업계에서는 생명과학Ⅱ 응시생 상당수가 서울대와 의·약대 등 최상위권 지원을 겨냥하고 있는 수험생들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만약 전원 만점처리가 되면 생명과학Ⅱ 선택 상위권 학생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20번 전원 정답처리 시 표준점수 최고점이 평가원이 발표한 69점보다 1~2점 하락 예상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점 2점 문제인 생명과학Ⅱ 20번 정답률은 24.6%로, 20번을 모두 정답처리 할 경우 75.4%에 달하는 오답처리 학생들의 정답처리로 평균 1.5점의 상승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평균이 상승하게 되면 표준점수 최고점은 하락하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평가원과 교육부는 법원 결정 이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논의중이다.
여러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교육당국이 본 소송까지 이번 사안을 끌고 가지않고 문제의 오류를 인정하는 경우 수습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 입시 일정상 수시 최종 합격자 발표가 16일까지고, 정시 원서접수는 이달 30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평가원이 전원 정답처리시 성적표 정정을 통해 입시일정에 맞춰 성적 통지를 하면 된다. 다만 이렇게 될 경우 정답 수정의 기회가 있었던 교육당국의 책임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앞서 해당 문항에 대한 수험생과 입시업계의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평가원은 “조건이 불완전하더라도 변별력이 있는 문항으로는 타당하다”는 대응으로 무시해왔다. 이날 수능 성적 결과 발표 브리핑에서도 관련 질의가 이어졌지만 “(법원 결정에 대해) 현재 예단하고 있지 않다. 기본적으로 이미 정해진 대입 일정을 진실하게 지켜나갈 것이고, 그것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본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상황은 조금 복잡해진다. 법원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지만, 정답 인정 여부는 본 소송에 가서 결정된다. 긴급한 상황을 고려하면 이르면 2주 이내 1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법원 안팎의 관측이지만, 1심 결과가 늦어지거나 결과에 불복, 항소심까지 이어지면 시간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평가원에서 최초 발표대로 정답을 1개만 인정하면 이후 소송이 계속 진행돼 본 소송 승패 여부에 따라 중복 합격자 발생 등 혼란스런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