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에 과학 한 스푼] 부드러움이 좋은 이유](https://img.khan.co.kr/news/2021/12/10/l_2021121001001176300110852.jpg)
유명한 돈가스 맛집을 방문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히레가스를 주문했는데 요리의 겉모습만 봐서는 아직까지 그리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그런데 돈가스를 한입 베어물자 왜 맛집이라 불리는지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속살의 부드러움이 남달랐기 때문이죠.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돈가스에 사용하는 돼지고기는 사전작업이 필요합니다. 뾰족하게 돌기가 있는 망치 비슷한 도구로 고기를 두드리는 것인데요. 그렇게 하면 고기의 육질이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간단해 보이는 일이지만 돈가스의 품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 집 돈가스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합니다. 주인에게 그 비법을 물어보니 수육을 만드는 방식을 응용했다고 합니다. 고기를 미리 삶거나 쪄서 부드럽게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돼지고기 특유의 기름진 맛을 잃지 않은 것이 놀랍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 비법까지는 알려주지 않네요. 나중에 제가 한 번 연구해봐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었을 때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미각과 후각에서 느낀 감각을 뇌에서 종합하여 내린 평가입니다. 뇌는 우리 몸에 유익한 것들은 ‘맛있다’라는 꼬리표를 달아 놓습니다. 우리가 부드러운 육질을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부드러운 음식은 소화흡수가 잘되니 우리 몸에도 좋기 때문이죠.
부드럽게 만드는 것을 ‘연화’라 하는데요, 다양한 방식이 사용됩니다. 앞서 소개한 고기를 두드리는 방식은 식재료에 물리적 충격을 가해 단단했던 조직을 연하게 만듭니다. 힘을 쓰지 않는 방식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고기의 저온 숙성입니다. 파인애플, 배 등을 갈아 만든 과일즙에 고기를 일정 시간 담가두면 육질이 부드러워지는데, 과일즙에 들어 있는 액티니딘이라는 효소가 고기의 단백질을 작은 크기로 분해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연화작용은 열을 이용하는 것인데, 고온의 열도 식재료를 구성하는 단백질, 탄수화물 등을 더 작은 크기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쌀을 씹으면 맛이 없지만, 밥을 지으면 더 맛있어집니다. 압력솥을 사용하면 한층 더 맛있는데요, 압력이 높으면 물의 끓는점이 높아지면서 더 많은 열을 가해 연화작용이 더 활발하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생식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열을 가해 조리하는 화식(火食)을 더 선호합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화식은 연화작용으로 인해 더 많은 영양분을 더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어 더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식에는 맛있음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진화학자들에 따르면 화식으로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게 된 인류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뇌의 진화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음식을 구하는 시간이 줄어들자 더 창조적인 일을 할 여유까지 생겼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연화작용은 요리의 맛과 더불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인 셈입니다.
돈가스의 부드러운 속살을 다시 음미해 봅니다.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음미해볼 만한 다양한 이야기도 담겨 있으니 더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