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1989년 최저임금, 주휴수당, 퇴직금 등 일부 조항만 예외적으로 적용하기로 개정한 지 32년 만이다. 내년 3월9일 대선을 80여일 앞두고 여야가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민생법안 통과에 초당적으로 협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16일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문제를 논의한다. 환노위 민주당 간사인 안호영 의원은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근로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다 적용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맞다”면서 “영세사업장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살피면서 노동자에 대한 차별도 없애는 방법이 있다면 여야가 충분히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완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11조가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1989년 국회는 근로기준법을 일부 개정하면서 최저임금, 주휴수당, 퇴직금 등 일부 조항만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하고 원칙적 배제 조항은 그대로 뒀다. 이에 따라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연차휴가를 쓸 권리가 없고, 야간·휴일에 일해도 가산수당을 못 받고, 직장 내 괴롭힘이나 부당해고를 당해도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할 수 없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취업자 수’ 자료를 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379만5000명으로 전체 임금 노동자의 18.5%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2년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확대 방안’ 보고서를 통해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입법을 보더라도 사업장 규모로 근로기준법을 차등 적용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법 개정을 권고했다. 지난해 9월 노동자·시민 10만명은 국회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촉구하는 청원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도 뒤늦게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환노위원들은 지난 13일 ‘차별 없는 노동법 보장을 위한 입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촉구했다. 환노위 국민의힘 간사인 임이자 의원도 지난달 24일 한국노총을 방문해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말했다.
양당의 대선 후보는 법 개정에 미온적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15일 한국노총 지도부 간담회에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이라는 대원칙에는 찬성하나, 사측한테만 부담을 지우면 지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들의 표심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이날 “이 후보와 윤 후보가 각별히 관심을 갖고, 정의당, 민주당, 국민의힘이 함께 힘을 모아 500만 노동자들에게 노동권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드리자”고 제안했다.
여야는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을 원칙적으로 적용하되, 예외 조항이나 유예 기간 등을 두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안호영 의원은 “직장 갑질 금지 같은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조항부터 먼저 적용하고, 영세 사업주에게 부담 주는 내용은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내용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