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배우 유주혜·이예은·나하나 인터뷰
어느 겨울밤, 교도소 복역을 마친 한 여자가 작은 마을 길리앗에 도착합니다. 여자의 이름은 퍼씨. 출소 후 오갈 데 없던 그가 길리앗행을 택한 이유는 단 하나. 우연히 본 길리앗의 단풍 사진이 마음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길리앗은 쇠락해가는 작은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식당 ‘스핏파이어 그릴’에 일자리를 얻게 된 퍼씨. 그곳에서 퍼씨는 식당을 운영하는 노인 한나와 그의 조카며느리 셸비를 만나게 됩니다.
세 여자는 나이도, 성격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마다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이죠. 퍼씨에게는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과거가, 한나에게는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사연이 있고요. 셸비는 가부장적인 남편 케일럽의 그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은 이 세 여자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선댄스 관객상을 수상한 동명의 영화(1996)를 무대화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2007년 초연됐는데요. 당시 배우 조정은·이혜경·이주실이 주연을 맡아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공연된 적 없지만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선 ‘다시 보고 싶은 명작’으로 꾸준히 거론되어 왔죠.
그런 이 작품이 2021년 12월, 1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습니다. 프로덕션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세 여성의 우정 이야기와 아름다운 음악으로 감동을 주고 있는데요. 돌아온 <스핏파이어 그릴> 무대를 이끌고 있는 퍼씨 역의 세 배우, 유주혜·이예은·나하나를 올댓아트가 만났습니다. 세 배우는 작품 속 세 주인공이 그랬듯, 서로를 물심양면으로 응원하며 작품을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셋이 함께라면 못할 배역이 없을 것 같다”는 세 배우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시죠.
※이 인터뷰에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왼쪽부터) <스핏파이어 그릴>의 배우 유주혜, 이예은, 나하나|올댓아트 정다윤
유주혜
<스핏파이어 그릴>엔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제작사 PD님이 대본과 음악을 먼저 보내주셨어요. 들어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넘버가 좋더라고요.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죠.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었지만, 영광이라고 생각했어요.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배우 조정은이 젊은 시절 출연했던 작품으로도 유명해요.
옛날에 정은 언니가 주연이었던 뮤지컬 <피맛골 연가>에 앙상블로 출연했어요. 그때 유희성 연출님이 제게 정은 언니 어렸을 때를 보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신 적 있어요. 그래서인지 정은 언니는 제게 특별한 ‘워너비’예요. 제가 <키다리 아저씨> 할 때 언니가 보러 와주셨거든요. 이후에 언니가 콘서트에서 <키다리 아저씨>의 넘버 ‘행복의 비밀’을 불렀다고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공연 장면|엠피엔컴퍼니
<스핏파이어 그릴>의 퍼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고통이 제일 크다고 생각하잖아요. 아마 퍼씨도 그렇게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거대한 자연 앞에서 한낱 미물이 되는 경험을 하면서, 좁았던 세상에서 벗어나요. 더 넓어진 마음과 시야를 갖게 되죠. 결국에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위로를 전할 수 있게 되고요.
연습 과정은 어땠나요? 퍼씨라는 인물을 만들어간 과정이 궁금해요.
처음 캐릭터를 만났을 때 퍼씨 역의 배우 셋 다 화가 많았어요. 퍼씨에게 너무 큰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날이 서있고 가시가 돋친 인물로 접근을 했죠. 그런데 연출님과 이야기하면서 이 아이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어요. 퍼씨는 단풍 사진 한 장만 보고 길리앗에 가겠다고 결심하잖아요. 사실 굉장히 섬세하고 감동을 잘 받는 아이인 거죠. 그래서 갈수록 날카롭고 성질내는 모습을 많이 쳐냈어요. 원래 평범하고 순수했던 아이가 길리앗 사람들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배우 유주혜|올댓아트 정다윤
함께 퍼씨 역을 연기하는 다른 두 배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은이는 <아일랜더>란 작품에 같이 출연했어요. 제 파트너는 아니었지만 리허설에서 딱 한 번 호흡을 맞춰본 적 있거든요. 그때 예은이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가 생겼죠. 퍼씨를 할 때도 정말 섬세해서 퍼씨의 여정이 잘 보여요. 음색 자체도 워낙 호소력이 짙고요. 그리고 웃는 얼굴이 정말 ‘치트키’예요.
하나는 집중력이 정말 좋아요. 저는 부끄러움이 많아서 연습할 때 뭘 시키면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는 담대해요. 목소리가 아름다워서 퍼씨와의 조화가 환상적이고요. 노래를 잘해서 저희를 많이 도와줬어요. 그리고 하나는 ‘분위기 메이커’예요. 우리 팀 안에서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아요.
퍼씨, 셸비, 한나 세 여성이 세대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셸비 역의 방진의, 정명은 배우, 한나 역의 임선애, 유보영 배우 등 선배 여성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소감은 어떤가요?
<펀홈>을 할 때도 아역, 청년, 중년 배우가 함께 나왔지만, 무대 위에서 같이 대사를 주고받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서로 눈을 보고 대사를 주고받을 수 있어서 감동이에요. 특히 한나는 나이가 많고 풍파를 견뎌온 사람이잖아요. 그런 한나가 퍼씨를 가족이자 친구라고 말해주는 데서 오는 감동이 커요. 언니들,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너무 좋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깊어질 게 기대도 돼요.

배우 유주혜|올댓아트 정다윤
식당에 일자리를 얻은 퍼씨는 요리가 서툴러서 고생을 하는데요. 유주혜 배우의 실제 요리 실력은 어떤가요?
전 자취한 지 꽤 돼서 제가 한 음식은 맛있게 먹어요. 외식할 일이 많다 보니 집에 있을 때만큼은 차려서 먹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전에는 베이킹도 한 적 있고요. 가장 자신 있는 메뉴는 만둣국입니다.
극 중 100달러를 내고 사연을 응모하면 스핏파이어 그릴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콘테스트가 진행되잖아요. 만약 그런 콘테스트가 실제로 열린다면 참가할 건가요?
저는 무조건 응모할 거예요. 귀농에 대한 꿈이 있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서 문을 열었더니 피톤치드가 느껴지고 새소리가 들리는 상상만 해도 좋아요. 게다가 길리앗엔 식당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제가 부르는 게 값일 거 아니에요. (웃음) 거기서 식당 하면서 예은이, 하나가 놀러 오면 맛있는 거 해주고 싶어요.

배우 유주혜|올댓아트 정다윤
퍼씨는 스스로를 둥지를 틀지 않는 들새에 비유해요. 실제 유주혜 배우는 어떤 동물을 닮았나요?
나무늘보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봤어요. (웃음) 성격이요? 사람들은 강아지라고 생각하는데, 전 제가 고양이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다가오는 2022년은 어떤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작년 <펀홈> 이후로 1년을 쉬었어요. 재정비가 됐으니 열심히 달릴 예정입니다. 전에 했던 공연들을 내년에 다시 하는데, 한 번 했던 역할이니까 더 깊어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예은
이 작품과 전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면서요?
대학에서 1학년 때 처음 했던 공연이 <스핏파이어 그릴>이었어요. 처음 그 무대에 섰던 순간이 잊히지 않아요. 이 작품으로 프로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게 제안을 해주신 거예요. 사실은 쉬는 시간을 가져볼까 생각했는데, 이 작품이라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이 작품과 함께 배우 이예은의 ‘시즌 1’을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배우 조정은이 젊은 시절 출연했던 작품으로도 유명해요.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출연이 결정됐을 때 정은 언니랑 <드라큘라>를 같이 하고 있었어요.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말하니까, 언니가 너무 잘 어울린다며 꼭 보러 가겠다고 응원해 줬어요. 정은 언니가 했던 작품이라 부담이 되진 않았어요. 제가 감히 언니랑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겠어요? (웃음)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고요. 다만 감사한 건 있었죠. 정은 언니를 비롯한 선배님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셨기 때문에, 14년이 지난 지금도 작품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 거니까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공연 장면|엠피엔컴퍼니
<스핏파이어 그릴>은 어떤 작품인가요? 전에 출연했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따뜻하고 아늑한 벽난로 같은 작품이에요. 치유의 에너지가 강한 작품이죠. 단순하게 보면 전에 했던 캐릭터들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상처, 결핍이 많은 인물들을 많이 맡았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선 마지막에 새벽빛을 받으며 그간의 어둠이 싹 녹아내려요. 이렇게 온전히 치유 받는 인물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퍼씨의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에 아무리 치유를 받더라도 흉터는 남을 거예요. 그렇지만 속이 후련한 느낌은 있어요.
함께 퍼씨 역을 연기하는 다른 두 배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셋 다 굵은 결은 비슷해요. 서로 개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작품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했거든요. 이렇게까지 서로 격려를 해주면서 작품을 완성했던 건 처음이에요. 셋이 함께 있으면 어떤 역할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선 주혜 언니는 사랑스러운 면이 많이 보여요. 언니가 갖고 있는 순수한 이미지가 부각되다 보니, 퍼씨의 상처가 드러났을 때 특히 안타까워요. 하나는 막내지만 고통의 크기와 깊이가 남달라요. 심해 같은 퍼씨예요. 하나 특유의 분위기나 아우라가 퍼씨와 만났을 때 주는 느낌이 참 좋아요.

배우 이예은|올댓아트 정다윤
많은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작품이기도 한데요.
저는 이번에 임선애 선배님 정도 나이차가 나는 선배님에게 처음으로 귀엽다는 말을 해봤어요. (웃음) 그만큼 선배님이 너무 사랑스러우신 거예요. 제가 선배님을 안고 ‘너무 귀여우세요’ 하면 선배님은 ‘크흠’ 이러시죠. 작품 속에서처럼, 친구 같은 관계로 오래도록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미국에서 20년 전에 초연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음악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큰 힘을 줄 수 있는 게 음악이거든요. 그 시절에 유행했던 컨트리 음악인데, 지금 들으니 오히려 생소하고 유니크한 느낌을 줘요. 음악의 완성도도 높고 정교하고요. 그리고 다른 작품은 인물이 힘들 때 노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은 고통보다는 희망을 노래해요. 거기서 오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남다른 것 같아요.

배우 이예은|올댓아트 정다윤
식당에 일자리를 얻은 퍼씨는 요리가 서툴러서 고생을 하는데요. 이예은 배우의 실제 요리 실력은 어떤가요?
소질이 없지는 않아요. 레시피를 보면 따라 할 수 있는 정도? 사실 남편이 요리를 잘해서 그 덕을 많이 보고 있어요. 지지 않으려고 저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고 노력하죠. 가장 자신 있는 메뉴는 김치볶음밥입니다.
퍼씨는 스스로를 들새에 비유해요. 실제 이예은 배우는 어떤 동물을 닮았나요?
사람들이 절 고양이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반대예요. 고양이처럼 호불호가 확실한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저희 집 강아지가 순하고 애정 표현도 많은 편인데,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강아지과’예요. (웃음)

배우 이예은|올댓아트 정다윤
관객들이 <스핏파이어 그릴>을 봐야 하는 이유를 꼽아본다면?
자극적인 이야기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렇게 희망을 노래하는 작품이 드물잖아요. 오셔서 가사를 따라가며 보시면 정말 큰 긍정적 에너지를 받고 가실 거예요. 그리고 요즘 대학로에서 드문 8세 관람가거든요.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도 좋은 작품이에요.
다가오는 2022년은 어떤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배우 이예은의 ‘시즌 1’을 마치고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그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제 성격상 마냥 쉬진 않을 것 같고, 어딘가에서 뭔가 할 수도 있고요. 저도 내년에 제게 어떤 일이 펼쳐질지 궁금해요.
나하나
이 작품과 전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면서요?
대학생 때 <스핏파이어 그릴> 장면 시연을 한 적이 있어요. 왜 기억을 하냐면, 그때 노래를 너무 못 불렀거든요. (웃음) 당시 결절이 심해서 음이 안 올라갔어요. 조정은, 이혜경 선배님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패로 돌아갔죠. 당시엔 제가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노래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어요. 딱 준비가 됐을 때 이 작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죠.
퍼씨는 어떤 인물인가요?
자기가 빛인 줄 모르고 살아가다가, 마을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빛이었구나’ 깨닫는 사람이에요. 원래는 퍼씨 자체가 빛이었는데 외부의 어둠에 가려져 있었어요.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의 빛과 자연의 빛을 만나면서 다시 본연의 빛을 되찾아 가죠. 결국엔 주변 사람들을 비춰주는 사람이 되고요. 극 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힘을 줄 수 있는 캐릭터예요.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공연 장면|엠피엔컴퍼니
퍼씨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작품 속에서 사람을 죽여본 게 한두 번이 아닌데요. (웃음) 그럼에도 퍼씨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퍼씨는 힘든 일을 겪은 것에 비해 너무나 순수하거든요. 살인을 저질렀을 거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해한 사람, 하지만 결국은 살인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깊은 아픔을 가진 인물이에요. 이렇게 극과 극의 인물을 연기해 보는 건 처음이라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게 숙제였어요.
함께 퍼씨 역을 연기하는 다른 두 배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예은 언니는 다른 인물들과 관계를 잘 맺어요. 극을 혼자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환히 비추면서 가죠. 그리고 해당 장면에 필요한 연기를 정확하게 해내요. 그래서 언니의 공연을 보면 극이 생동감 있게 잘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주혜 언니는 ‘뮤지컬 최강 똘똘이’예요. 정말 똑똑해요. 예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극에 꼭 필요한 노래와 연기를 해내고요. 누구도 해치지 않을 것 같은 무해한 느낌과, 사람들을 다 선하게 바꿔놓을 것 같은 에너지가 있어요. 그게 극과 딱 맞아떨어지죠.

배우 나하나|올댓아트 정다윤
세 여성이 세대를 뛰어넘어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많은 선배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소감은 어떤가요?
정말 행복해요. 이렇게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작품이 얼마나 되겠어요. 언니들의 연륜과 연기력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큰 배움이었어요. 그리고 이 작품이 보여주는 여성들의 연대는 정말 따뜻해요. 여성끼리 연대해서 또 다른 편견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대상을 공격하는 내용이 아니거든요.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주고 편견을 거두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퍼씨가 힘들었던 과거를 털어놓자 셸비가 퍼씨를 위로해 주는 넘버 ‘Wild Bird’가 참 감동적이었어요. 그 곡을 들을 땐 어떤 기분이 들어요?
첫 공연 날, 진의 언니의 눈을 보고 ‘엄마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퍼씨에겐 엄마의 부재가 상처였잖아요. 퍼씨를 가장 보호해 줘야 할 엄마라는 자리가 비어있으니까요. 성폭행당할 때도 엄마는 은폐하기 위해 퍼씨를 때렸어요. 출소한 뒤에도 퍼씨는 돌아갈 곳이 없었죠. 그런 퍼씨에게 셸비의 품은 처음으로 느껴보는 엄마의 품 같았을 거예요. 그 노래가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배우 나하나|올댓아트 정다윤
식당에 일자리를 얻은 퍼씨는 요리가 서툴러서 고생을 하는데요. 나하나 배우의 실제 요리 실력은 어떤가요?
형편없어요. 계란 프라이를 하다가 화상을 입었을 정도예요. (웃음)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알리오 올리오는 잘해요!
퍼씨는 스스로를 들새에 비유해요. 실제 나하나 배우는 어떤 동물을 닮았나요?
저희 집 고양이들이요! 깜짝 놀랄 정도예요. 첫째랑은 얼굴이 똑같고요. 둘째는 뱃살의 질감이 저랑 똑같아요. 셋째는 약간 멍청하거든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침을 흘린다든가, 자다가 자기 기침소리에 놀라서 깬다든가…. 그런 이상한 모습이 절 닮았어요. (웃음)

배우 나하나|올댓아트 정다윤
관객들이 <스핏파이어 그릴>을 봐야 하는 이유를 꼽아본다면?
요즘처럼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왜 공연을 봐야 할까 의문도 드실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의 육체에 의식주가 필요하듯, 영혼에도 양식이 필요해요. 그게 공연이 될 수도, 다른 예술이나 여행이 될 수도 있겠죠. 그것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다른 생명체와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퍼씨 역시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을 풍경 사진을 보고 길리앗을 선택했잖아요. 관객분들도 영혼의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스핏파이어 그릴>이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2022년은 어떤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배우에게 가장 큰 사치는 다른 외부적인 요소는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이야기만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년엔 스스로를 위해 그런 사치를 한번 부려보려고 해요. 무리하지 않고, 제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서 최선을 다하는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뮤지컬 <스핏파이어 그릴>
2021.12.8 ~ 2022.2.27
서울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
공연 시간 120분
만 7세 이상 관람가
유주혜, 이예은, 나하나, 임선애, 유보영, 방진의, 정명은, 이주순, 최재웅, 이일진, 민채원, 최수형, 임강성, 허채윤, 성우진 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