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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대학들 참고 자료로 쓰도록 설계…국가 주관 지필고사로 남으며 도로 학력고사화”

입력 2021.12.20 21:14

수정 2021.12.20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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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창시자’ 박도순 초대 교육평가원장

“수능, 대학들 참고 자료로 쓰도록 설계…국가 주관 지필고사로 남으며 도로 학력고사화”

당락 결정, 한 번의 시험 아닌
대학이 다양한 전형 선발해야
서열화·학벌사회 본질 깨져

“지금 수능 쳐서 본인이 나온 대학에 다시 입학할 수 있겠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문제점을 묻는 물음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는 거꾸로 질문을 던졌다. “대학에서 공부도 더 하고 사회생활을 해도 몇 년은 더 했는데 본인이 고등학생 때보다 못한 사람이 됐다는 평가가 이해되느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수능이 좋은 인재, 훌륭한 인재를 가리는 시험이 아니고, 그냥 잘 외우는 사람을 가리는 엉터리 시험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래서 누가 물어보면 ‘나도 다시 시험 치라면 합격할 자신이 없소’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웃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수능 제도를 설계·시행하면서 ‘수능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지난 15일 경향신문과 통화하면서 “애초에 수능은 학생들의 대학입학 전형에 쓰이도록 고안되지도 않았다”고 했다. 처음엔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공부할 준비가 됐는지를 묻는 자격고사로 고안됐는데, 이런 시험을 만들 역량이 없는 대학들을 위해 국가가 제도를 만들다보니 국가가 주도하는 유일한 전국단위 지필고사로 남았다는 얘기다. 그는 “수능은 대학들이 학생을 평가하는 다양한 지표, 그중에서도 참고 자료로만 사용하도록 설계됐다”며 “27년 동안 국가가 주관하는 유일한 전국단위 지필고사로 남다보니 도로 학력고사로 돌아가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국가가 관리하는 학력평가라는 점 때문에 수능이 공정하다는 오해도 크다고 했다. 박 교수는 “학력평가라지만 무엇이 지능이고 무엇이 학력인지를 정의하는 책만 해도 수없이 많을 정도로 복잡하고 어려운 영역”이라면서 “수능에서 무엇을 재고 측정하는지, 그 측정이 정확한지 의심해본 적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340점과 350점이 무엇에서 얼마나 차이가 난다는 것인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데, 합격과 탈락이 결정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렇게 오차가 크고 누가 누구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정확히 줄 세울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도 ‘수·우·미·양·가’로 표시를 했고, 수능 점수로 학생들을 뽑아가는 대학들조차도 성적을 A·B·C·D로만 평가하는 것”이라며 “딱 한 번 시험 쳐서 줄 세우는 수능은 학생의 고교 3년 성적표보다도 훨씬 신뢰도가 낮다”고 말했다.

수능 제도를 이대로 존치시키면서 조정을 통해 개선 방안을 찾는 방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박 교수는 “지난 수십년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를 다 해봤지만 다 문제가 생겼다”면서 “문제의 본질이 시험이 아니라 입시경쟁, 구체적으로는 대학 서열화와 학벌중심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지금처럼 한 번의 시험으로 수십만명을 줄 세우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서열화와 학벌사회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대학들이 보다 자율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을 선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대학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유형의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뽑으면 지금과 같은 일률적인 줄세우기 서열 문화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학의 선발권이 강화되면 불공정 논란이나 입시부정 문제가 부상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부정이나 불공정은 법으로 처단해야 하는 것이지, 어디에나 존재하는 부정부패가 무서워서 교육개혁을 안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다만 제도 개선을 고민하기 이전에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육 이슈에 대해 논의하고, 어떤 방향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숙의 과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학벌은 어떻게 할지, 서열화는 어떻게 할지, 평등에 기반한 보편 교육인지, 자유에 기반한 수월성 교육인지 원점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제대로 방향을 정해야 그다음 할 일이 보인다”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숙의한다면서 어떤 제도가 좋은지 저울질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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