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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보통의 영웅이 많다

슈퍼히어로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야 천차만별이지만, 좋은 이야기와 상관없이 눈물을 참지 못하는 특정 장면이 있다. 누군가의 대의에 수많은 사람이 손을 잡고, 평범하고 작은 선의가 거대한 정의가 되는 순간에 전율한다.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조희원 청년참여연대 사무국장

몇 주 전 관람했던 영화 <태일이>에서도 내 눈물샘을 자극한 것은 바로 그런 장면이었다. 평화시장으로 다시 돌아온 재단사 전태일이 삼동친목회의 회장이 되는 장면. 화면은 평화시장의 노동운동 선봉에 선 전태일과 함께, 그의 옆에 선 수많은 동료 재단사의 등을 비춘다. 동생 같던 ‘시다’(미싱보조원)들의 일상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나와 내 주변이 더 나은 오늘을 보내기를 바랐던 전태일의 다정함은 분명 노동권 인식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다정함에서 노동운동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영화는 보통 사람 전태일에 주목한다. 남의 집 마루 아래 누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아들 전태일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리고, 그 뒤로 영화 제작에 힘을 보탠 노동조합, 시민단체, 개인의 이름이 화면을 가득, 아주 오래도록 채운다. 시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는 연대의 힘이다. 작은 다정함을 거대한 정의로 바로 세우려는 보통 사람들의 뜻이다. 변화는 여기에서 온다. 작은 다정함이 운동으로 변하고, 세상의 변화가 태동하는 순간은 연대의 시점에 있다. 등에 불을 얹고 달려오는 전태일 열사의 마지막 순간이 아니라, 그 순간을 지켜보는 동료들의 뜨거운 눈시울, 미안함, 공감과 분노. 여기에서 영웅은 탄생한다. 혼자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세상은 한 명의 영웅이 바꾸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웅을 기대하는 순간이 있다. 지금이 그런 시기일지 모른다. 다음 5년을 이끌어야 할 사람, 대통령을 뽑아야 할 날이 고작 80일 정도 남았다. 그런데도 싱숭생숭함을 숨기기가 쉽지 않다. 연대의 따뜻함을 느끼고 희망을 꿈꾸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손에 잡히는 것은 불안뿐이다. 변화의 시작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에게서 ‘작은 다정함’은 코빼기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까. 작은 다정함보다 서로의 검은 점만 우글거리는 늪 같은 레이스에 지쳤기 때문일까.

대선 후보에게 청년 공약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함께 활동하는 친구에게 무엇을 가장 요구하고 싶으냐 물으니, 농담을 조금 섞어 ‘책임 사퇴’를 바란다고 했다. 그건 안 된다고 손사래 쳤지만, 그 마음이 공감되기도 한다. 성장은 중요하지만 52시간제와 최저임금제는 탁상공론이라는 반노동적 인식과, 차별금지법 질의에 “다 했죠?”라고 묻는 소수자 앞의 권위적인 태도를 보라.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해 매일을 투쟁 속에 살아가는 당사자에게 작은 다정함은커녕 짧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 같다.

이쯤 되면 난세의 영웅을 찾기보다 나와 함께 직접 영웅이 될 친구를 찾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잘난 영웅이 바꿔주지 않는다. 나의 삶에 연민을 갖지 못하는 영웅이라면 더더욱. 보통 사람의 서사시를 쓰자. 세상엔 아직 보통의 영웅이 많다. 나의 고난에서 모두의 권리를 찾고, 이를 바꾸자고 소리 높이는 단체들이 있다. 함께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연대로 가득 찬 연말을 보내고 싶다면, 이들 단체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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