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올해 11월27일부터 내년 3월6일까지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의 전시물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소재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 소장품들이다. 로테르담이 문화·예술 도시의 면모를 갖춘 것은 주요 미술품과 문화재를 기반으로 한 박물관·미술관의 분명하고 확실한 존재 때문이다. 로테르담의 박물관과 미술관엔 전통과 혁신이 공존한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박물관학의 새로운 기능과 역할을 실험·실천했다. 혁신과 변화를 선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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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로테르담도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 낮설지만, 이 미술관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쌍벽을 이루는,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컬렉션을 보유한 미술관이다. 문화예술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미술관이다. 설립과 운영 주체는 로테르담시로 시립미술관이다. 로테르담시 소유 건물인 쉴란트수이스(Schielandshuis)에 처음 자리잡았다.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을 피한 몇 안 되는 건물이다.
미술관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미술관은 로테르담의 변호사였던 보이만스(Frans Jacob Otto Boijmans, 1767~1847)와 선박왕이라 불리운 사업가 판뵈닝언(Daniel George van Beuningen, 1877~1955)이 기증한 미술품을 기반으로 출발했다.
미술관은 1841년부터 보이만스 소장품을 보관했다. 기증 관련 협상을 수차례 진행한 끝에 1847년 유증에 합의했다. 1849년 보이만스 미술관(Museum Boijmans)으로 출발했다. 개관 15년만인 1864년 화재로 르네상스 및 북유럽 회화작품 480점 중 293점, 2800여 점의 드로잉 중 4분의 1인 700여 점이 불에 타고 말았다. 플랑드르 화가의 작품 수장고 31개소 중 13개소가 소실되었는데 작가명으로 분류했던 탓에 이니셜이 ‘C~S’로 시작하는 작가들의 그림만 남았다.
도서관은 물론 판화 컬렉션, 도자기 등도 사라졌다. 겨울이라 운하 물이 얼어 소방용수가 부족했고, 수장고 열쇠도 찾을 수 없어 피해는 더욱 컸다고 한다. 하지만 보험금으로 확보한 13만6129길더는 새로운 미술품을 구입 소장할 기회가 됐다. 루벤스(Rubens, 1577~1640)의 드로잉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다시 수집했다. 다만, 1869년 로테르담의 전설적 컬렉터 블로후이젠(Dirk Vis Blokhuyzen, 1799~1869)이 소장한 페르메이르(Jan Vermeer, 1632~75)의 레이스 뜨는 여인(Lace Maker, 1632, 유화, 24x21㎝, 루브르미술관 소장)을 소장할 기회를 놓친 것은 “보일 때 사라”는 경구를 만들어 낼 만큼 후회막급한 사건이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
기증과 구입을 통해 확보한 소장품이 늘어나자 1929년 현재의 박물관공원(Museum Park)에 로테르담의 건축가 스테르(Adriaan van der Steur, 1893~1953)의 설계로 새로운 미술관 건립을 시작했다. 1935년 완공해 지금까지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스테르관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당시 관장이던 딕 한네마(Dirk Hannema, 1895~1984)와 건축가의 공통된 “미술관은 예술을 즐기기 위해 가는 곳”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실천한 곳이다. 세심하게 작고 친밀한 개인 컬렉션을 두었던 원래 미술관 환경을 반영해 전시실 크기를 조정했다. 현대적인 설계를 적용했다. 부채꼴 채광창을 통한 조명도 설치했다. 전시실 외에도 판화실과 도서실을 갖추었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 개보수 계획(안).
미술관의 획기적 변화와 발전은 로테르담의 사업가 판뵈닝언에 의해 이루어졌다. 생전에도 루벤스의 유명한 아킬레우스 시리즈를 포함해서 수많은 작품을 기증했다. 특히 1920년대에 쾨니히(Franz Wilhelm Koenigs, 1881~1941)가 수집한 중세 후기부터 인상파에 이르는 1만2000점 이상의 컬렉션을 인수해 1940년 보이만스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중 드로잉 컬렉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에 약탈당했는데, 구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로부터 2004년 139점의 드로잉과 3점의 판화를 돌려받았다.
판뵈닝언은 컬렉션 초기 헤이그 화파와 바르비종(Barbizon)파의 그림, 델프트 도자기에 집중했다. 그가 처음 보이만스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 것은 1918년부터다. 이듬해부터 플랑드르 지방 대가들(Old Masters)의 작품을 수집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도 암스테르담의 화상인 구드스티커(Jacques Goudstikker, 1897~1940)를 통해 많은 작품을 소장했다. 192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은행가 아우스피츠(Stefan von Auspitz, 1869~1945)의 컬렉션 상당 부분을 구입했다. 이때 그는 이탈리아 거장의 회화는 물론 청동조각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판뵈닝언이 사망하고 3년 후인 1958년 소장품은 미술관의 것이 되었다. 당시 미술관의 큐레이터 더크 한네마(Dirk Hannema, 1895~1984)는 유족에게 상속세를 대신한 물납(AiL, Acceptance in Lieu)을 권유하고 설득했다. 유족들이 보이만스 미술관을 지정 물납하면서 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로테르담 시의회는 이런 유족의 뜻을 기려 미술관 명칭을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Museum Boymans Van Beuningen)으로 바꾸어주었다. 1996년 오늘의 새로운 철자법을 반영한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으로 정했다.
판뵈닝언의 컬렉션은 중세 회화는 물론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 17세기 미술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엘 그레코, 18세기와 19세기 프랑스 회화, 신인상파와 고흐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와 장르를 포함한다. 미술관은 가장 광범위한 시대를 관통하는 컬렉션을 갖춘 미술관이 되었다. 이후 모네(Monet, 1840~1926), 몬드리안(Mondrian, 1872~1944)의 전시 등을 진행하며 인상주의와 모더니즘 회화로 컬렉션을 확장했다.
초현실주의 컬렉션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 있고 내실 있기로 유명하다.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워홀(Andy Warhol, 1928~87), 올덴버그(Claes Oldenbur, 1929~ ) 등 영국·미국 팝아트의 컬렉션도 명성이 높다. 중세 도자기와 르네상스 유리공예에서 리트벨트(Gerrit Rietveld, 1888~1964)의 가구 및 현대 네덜란드 디자인(Contemporary Dutch design) 컬렉션 등 장식 예술과 디자인 컬렉션도 출중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 거장들’ 전을 찾은 시민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1937)을 감상하고 있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 마르셸 뒤샹 등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이번 전시회는 3월6일까지 진행된다. 우철훈 선임기자
1960년대 부벤(Ebbinge Wubben, 1948~78) 관장은 미술관 조명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스테르의 건축사무실 직원이었던 건축가 보동(Alexander Bodon, 1906~93)에게 1972년 미술관 증축을 맡겨 기획전시실을 마련했다. 그는 두 개의 유리 횡단면을 통해 오래된 건물과 연결된, 매우 역동적인 현대미술을 수용하는 획기적인 공간을 만들었다. 각각의 전시회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 있는 3개의 거대하고 유연한 공간은 새로운 미술을 담는 그릇으로 충분했다, 미술관의 새로운 기능으로 등장한 오락과 편의시설, 서점을 중정(中庭)과 연결하며 공간을 개방하고, 주변의 역사적인 건물과의 조화를 꾀했다. 시멘트와 반투명 유리라는 모던한 건축재료로 말이다.
빔 비렌(Wim Beeren, 1928~2000)이 관장으로 재직하던 1978~1985년 다시 전시장 내부를 다양하게 변화했다. 그의 후임자이자 디자이너였던 빔 크로웰(Wim Crouwel, 1928~2019)은 건축가 허버트 헨켓(Hubert Jan Henket, 1940~ )에게 공원 쪽에 새로운 파빌리온을 짓도록 했다. 이는 1981년 판뵈닝언 드브리제 부부(Van Beuningen-de Vriese couple)가 수집했던 13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1만여 점의 산업화 이전의 생활용품, 산업제품, 가정용품을 전시하기 위한 곳이었다. 이 건물은 판뵈닝언 드브리제 관으로 명명되었는데 공간은 유리를 사용해서 개방감을 살렸다. 지하 1층에는 산업화 이전의 도구, 정원과 같은 층인 1층에는 약 165평의 전시실이 들어섰다.

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 중정 플라자.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공
크리스 데콘(Chris Dercon, 1958~ ) 재직(1996~2003년) 때 미술관이 오랫동안 염원한 공원 반대편으로 확장이 가능해졌다. 2003년 벨기에의 듀오 건축가 로브레히트와 뎀(Robbrecht en Daem)은 보동이 증축했던 건물에 새로운 갤러리를 추가했다. 그들은 전시장을 반투명의 우윳빛 유리를 사용했고 기존건물의 벽을 사용해서 거리로 외관을 확장했다. 원래 탑 아래에 있던 입구는 폐쇄하고, 안뜰로 가는 새로운 입구를 만들었다. 이 밖에도 1880년부터 1940년 사이의 주요 디자이너들의 작품과 은공예품으로 구성된 아널리스 크레컬(Annelies Krekel)의 컬렉션도 유명하다.

열린 수장고인 디팟 내부.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제공
이 종합미술관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약 1700여 명이 기증한 약 5만 점을 포함한 15만 점 이상의 미술품에다 조각과 공예품과 가구, 드로잉과 판화, 영화 컬렉션을 갖췄다. 여러 개의 미술관인 한 울타리 안에 공존하며 종합미술관을 이룬다.
동시대 미술 또한 놓치지 않고 있다. 미술관은 작가이자 컬렉터인 한 네프켄스(Han Nefkens, 1954~ )와 협업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수집과 전시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한 네츠켄스는 H+F Collection, H+F Patronage, ArtAids를 설립했는데, 이 기관을 통해 2000년부터 10년간 미술관을 후원했다. 전시기획과 참여, 주문제작, 구입 등을 도왔다. 2005년 네프켄스는 울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1967~ )의 물과 빛, 관객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세 개의 설치물로 구성된 ‘개념적 행동(Notion Motion)’을 기증했다. 스위스의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 1962~ )의 ‘마음 편히 가져(Let Your Hair Down)’를 주문 제작해서 소장하도록 했다.
큐레이터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한스 쇤베르그(Hans Sonnenberg, 1928~2017)는 2015년 자신의 컬렉션에서 큐레이터들에게 작품을 고르도록 했다. 미술관은 이 때 코브라 그룹의 일원이었던 콘스탄트 뉘엔휘스(Constant Nieuwenhuijs, 1920~2005), 호크니,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1960~1988)의 작품을 포함한 15점의 작품을 기증받았다.
컬렉션이 늘어나면서 증축과 보수공사를 거듭했지만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지하에 위치한 판화와 드로잉 컬렉션 수장고는 수해 위험에 무방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산적한 난제를 극복하려고 미술관은 과감하게 2019년 문을 닫고 2026년 재개관을 목표로 개보수 공사를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반영해서 거듭나려는 목표와 화재와 수해, 석면 등 안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결정이었다. 7년 동안 공사비로 책정한 예산은 약 2억5900만 유로(약 3450억원)에 달한다. 이중 로테르담시는 1억7090만 유로(2277억원)를 부담하고 나머지는 후원, 로테르담 기금, 정부, 유럽연합(EU), 산업계에서 확보할 계획이다.
그 첫 번째 성과물로 11월 네덜란드의 유명건축가 그룹인 MVRDV가 설계한 보이만스 판뵈닝언 창고(Boijmans Van Beuningen De Pot)가 개관했다. 세계 최초로 관리자 통제를 받지 않고 관람객이 임의로 수장고 안을 거닐면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디팟은 어떤 주제나 시대에 중점을 두는 전시는 열지 않는다. 관람객 혼자 또는 가이드와 함께 미술관이 소장한 15만1000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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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만스 판뵈닝언 미술관은 작품을 시대·장르별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재료의 유형이나 특정 주제에 맥락이 닿으면 고대와 현대, 조각과 평면이 함께 전시하는 실험을 꾸준히 지속했다. 디팟은 보이만스 판뵈닝언의 실험과 세계 박물관·미술관 문화 선도 기관이란 걸 다시 보여준다.
그들이 이런 수장고를 고안한 것은 지하 수장고 침수를 염려한 것이다. 해수면보다 낮은 국토에 둑을 쌓아 만든 국가답게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일깨워 준다. 이 사업은 모두의 협업으로 진행했다. 2015년 시 의회가 이런 실험이 가능하도록 공원부지에 건축을 허가했다. 디팟의 건축비용은 약 9000만유로(1252억원)이 들었다. (3회에 계속)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