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한끼’는 음식, 밥상, 먹는 일에 관해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코너입니다. 경향신문 기자들이 필명으로 씁니다.
그해 크리스마스 직전 우리는 말 그대로 파리의 길바닥에 내쳐졌다. 돈을 좀 아껴보겠다고 한국인 유학생이 며칠 비운 집을 빌리기로 했는데 로마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몇 시간이나 연착해버렸다. 비행기가 수직으로 쭉쭉 떨어지는 게 몇 번이나 느껴진 험한 비행이었다. 옆자리에 혼자 탄 프랑스 청소년이 고개를 푹 숙이고 벌벌 떠는데, 안쓰러워 손이라도 잡아주고플 정도였으니.
우리의 연락을 기다리다 지친 유학생은 매우 화가 난 상태였다. 아는 동생에게 열쇠를 맡겨뒀는데 그걸 건네달라는 부탁을 자정이 지난 시각에 어떻게 하겠느냐며, 약속을 안 지킨 이들에게 집을 내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밤중에 이방인을 접촉해야 하는 지인의 처지도 안타깝지만 우리야말로 이역만리에서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그해 12월 런던 어느 백화점에서 본 크리스마스 장식.
서둘러 한인 사이트를 검색해 몇 군데 민박의 연락처를 찾았다. 밤늦은 시간에 전화벨 울리는 게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곳에서 전화를 받아 자기네 민박은 다 찼고 최근 지인이 새로 연 데가 있으니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그 집 주인이 전화를 받았다. 어딘가 살짝 어설픈 우리말을 구사하는 그가 자리가 있다고, 지금 와도 된다고 했다.
갓 문을 연 곳 답게 장식이 거의 없었다. 흰 페인트로 단정하게 칠한 집안에 간단한 안내문구가 적혀있고 방마다 이층침대가 놓여 있었다. 30대쯤 돼 보이던 이 민박집 주인장은 고향이 북한인 듯 했다. 그곳을 떠난 이들이 남한에만 오는 게 아니라 유럽 전역에 산다는 것을 안 지 알마 안 된 때였다. 긴 얘기를 나누지도 사정을 캐묻지도 못했고 다만 민박집 한가운데 놓인 반짝이는 새 애플 데스크톱을 보며 경외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도 우리에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라면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신라면이었던가, 진라면이었던가. 방금 전까지 길에서 덜덜 떨다 들어온 우리가 각자의 그릇에 정신없이 고개를 묻은 동안 그는 조용히 컴퓨터 앞에 가서 자기 일을 했다. 아이맥 앞에 앉은 그가 성인처럼 보였다.
그날 우리는 다섯시까지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 묵을 숙소를 검색했다. 이 집에 머무를까 싶기도 했지만, 우리만의 공간과 적당한 부엌이 있었으면 했다. 크리스마스니까 장을 봐서 뭐라도 요리해 먹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은인의 민박집을 떠났다.
다음날 오후, 열쇠를 건네받아 6구의 작은 오피스텔에 들어간 우리는 그대로 뻗고 말았다. 삼십 분만 눈을 붙이자고 한 게 몇 시간이 됐다. 비행기에서부터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이다. 눈을 뜨니 창밖이 이미 어두컴컴했다.
아뿔싸. 장을 보러 나간 우리는 또다시 절망하고 말았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것이었다! 편의점에 익숙했던 우리는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못했다. 열린 가게라곤 단 하나, 중동계 사장님이 운영하는 채소 가게 뿐이었다. 마지막 손님이던 우리는 양파와 파프리카만 손에 쥐고 나와야 했다.
물러날 데가 없었다. 냉동실을 뒤져보기로 했다. 파리와 지역을 오가며 일한다는 집주인이 언젠가 얼려놓았을 것들이었다. 반쯤 남은 대형 냉동 빠에야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붉은 고기가 나왔다. 프라이팬에 올려 대충 볶고 구웠다.
웬걸. 둘 다 맛이 훌륭했다. 마지막 날, 최대한 비슷한 것들을 마트에서 사와 냉동실에 채워넣었다. 주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파리를 떠났다. 허술하게 도착해 많은 이들에게 빚진 크리스마스였다.
성산동흥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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