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 지하철 안. 대다수가 차갑거나 무거운 무표정이다. 설혹 누군가 미소를 짓고 있다 해도 마스크에 꽁꽁 가려 알아챌 수 없다. 저마다 고개를 반쯤 숙이고 휴대전화를 만진다. 화면을 두드리고 스크롤을 훑어내리느라 바쁘다. 더러 이어폰 밖까지 흘러나오는, 볼륨 높인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조용하다. 한 공간에 함께 있기는 한데 각자 따로따로. 지금, 초연결시대의 일상이다.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질수록 냉랭해진 느낌은 기분 탓일까.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의든 타의든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닫고 홀로 지내는 삶이 익숙해졌다. 2년 가까이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고립과 단절이 심해졌다. 비대면이 일상으로 자리 잡아 원격수업, 재택근무, 온라인 배달 등이 활성화하며 디지털 연결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지만 현실 세계는 고립과 소외가 가중됐다. 대면 접촉은 위험이기에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혼밥과 칸막이, 인원 제한과 거리 두기가 기본이라 이웃·동료와 마주 앉는 일조차 꺼렸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대면 소통 능력을 갈수록 약화하기에 이르렀다.
221번. 사람들이 하루에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평균 횟수라고 한다. 늘 곁에 두고 온라인 연결을 유지하는 셈이다. 마치 신체장기처럼 붙어 있는 이 스마트폰이 외려 고립을 부추긴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매일 평균 3시간15분, 1년에 1200시간쯤 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오직 혼자인 시간이다. 대화는커녕 눈인사조차 못한다. 온 식구가 모인 밥상머리에서도 제각각 폰을 보는 일이 예사다. 바로 곁에 있는 가족이나 동료에게 말 대신 문자메시지를 건네기 일쑤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굳이 쳐다보지 않고 몸에 지니고 있기만 해도 낯선 사람과 미소를 주고받는 일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왔다.
스마트폰 중독의 폐해는 단순히 시간 과소비나 주의력 산만에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려 게시물을 확인하고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쫓게 만드는 소셜미디어가 문제의 근원이다. 소셜미디어가 새로운 연결과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장점을 가진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로잡아 계속 머무르게 하는 목적으로 설계돼 있어 갖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문제점도 분명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돈벌이를 위해 분열을 조장하고 분노와 증오를 일으키는 유해 콘텐츠를 방치했다는 페이스북 직원의 내부고발이 나오자 인스타그램 등이 부랴부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소셜미디어는 사용자들을 철저히 고립·소외시킨다는 점에서 그 폐해가 심각하다. 영국 학자 노리나 허츠는 이를 ‘봄프’(BOMP·a Belief that Others are More Popular)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남들이 더 인기 있다는 믿음’이라는 뜻이다. 소셜미디어를 들여다보면, 세상에서 나만 빼고 모두가 잘 먹고 즐겁게 지낸다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만 혼자라는 외로움, 두려움과 고통을 겪는데 소셜미디어가 이를 조장한다는 얘기다. 허츠는 또 “셀카를 찍는 손이 누구 것이냐”고 묻는다. 제 것이 아니라 소셜미디어 가상공간의 손이라는 뜻이다. 거짓으로 꾸며서라도 현실 아닌 세상에서 잘 보이려고 안달복달하는 현상을 꼬집은 것이다. 여기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산업화·양극화·고령화 등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고립과 소외가 팽배해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더 빠르게,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0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성인 5명 중 1명(22.3%)이 외롭다고 했고, 절반 이상(53.6%)은 동호회 등 단체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고립이 심해지면 공동체가 건강을 잃고 무너질 우려가 높아진다. 공동체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소통을 회복할 방법을 궁리해야 한다.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도, 기업도 소외를 없앨 방책을 부단히 강구해야 한다. 가난과 실업에 직면한 취약계층을 돌보는 게 급선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얼까.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자. 스마트폰 놓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이웃에게 친절한 인사를 전하는 것부터. 동료들과 간식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 편리한 배달은 잠시 멈추고 동네 가게로 나가보면 어떨까. 인간은 친화력과 협력을 바탕으로 진화했다고 하니 더불어 살기를 잊으면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