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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 피해, 침묵이 능사일까

입력 2021.12.24 03:00

수정 2021.12.2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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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말들이 입에 감길 때가 위험하다. 고령의 아버지가 ‘팬데믹’ ‘피시알(PCR)’ 같은 말을 쓰는 때가 그렇다. 농민들이 ‘UR라운드’, 즉 우루과이라운드나 WTO, FTA 같은 말들을 일상용어처럼 내뱉기 시작하면서 살기 더 어려워졌다. ‘농산물 수입 개방’의 명료함이 원뜻도 가늠하기 어려운 영어 약자로 대체되면서 세계는 좀 더 복잡해졌다. 무역의 규모나 물목들도 광범위해지고 지식재산권 같은 무형의 상품들도 사고판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먹거리도 의무수입이라는 명분으로 받아들인다. 석유를 태워 가며 배를 타고 돌아다니느니, 제 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알뜰하게 먹고, 없는 것만 사다 쓰면 될 텐데 무역 질서는 간단치가 않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영어약자 ‘RCE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는 입에 더 붙지 않는다. 아세안 10개국과 일본, 중국, 호주, 뉴질랜드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을 맺고 물자도 서비스도 자유롭게 오고 가게 하는 협정이라 한다. 일본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은 한국이 ‘RCEP’로 한·일 FTA를 맺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도 하고 국회비준까지 마쳤다. 여기에 ‘CPTPP’까지 오면 더 어렵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의 영어 약자로 태평양 지역 11개국이 맺는 다자 간 자유무역협정이고 한국도 발을 들이려는 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CPTPP를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이라 설명한다. 기존의 양자 간 FTA는 개별이용권이지만 다자 간 FTA는 모든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라는 것이다. 탁월한 설명이지만 자유이용권이 주어져도 자이로드롭이나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는 노약자들의 탑승을 제한한다.

이 무역에 참여하면 짜릿한 재미를 즐길 이들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배제된 이들이 농업계다. RCEP에는 농업강국들이 포함되어 있어 한국의 농수산물의 추가개방은 국익 차원에서 이뤄질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번 RCEP 협정으로 농업계 피해를 잘 인지하고 있고 철저히 대비하겠노라 답했다. 하지만 영향평가에서 농업 피해액 산정액은 연간 77억원. 농업이 아무리 궁색해졌다 해도 여전히 250만명이 종사하고 있는 산업 분야의 피해액치고는 과하게 적다. 입법조사처의 보고서 ‘RCEP 영향평가의 농업 부문 주요 결과와 향후 과제’에서도 제한된 자료로 한정된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선택된 기술상의 한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지만 정부는 한계 따윈 처음부터 없다며 강변하는 태도다.

일례로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예측되는 과수 부문의 경우 두리안 같은 것이 들어올 텐데 한국 사람들은 두리안 같은 것도 잘 안 먹고 두리안 농사도 짓지 않으니 ‘직접피해’가 없다는 말을 버젓이 뱉는다. 포도 농사를 짓는 농민이 왜 두리안 수입을 걱정하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오렌지나 바나나뿐만 아니라 다양한 열대과일을 경험하고, 선호도 높아져 국내 과수산업과의 충돌을 지적하는 공공기관의 연구 결과들은 넘쳐난다. 낯설었던 아보카도나 자몽 같은 먹거리가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건만 대응책은 한가하다. 게다가 ‘온난화’에 대비한다며 정부는 그간 망고, 구아버와 같은 아열대 작물을 육성해 왔건만 정부 시책 간 엇박자가 난다. 값싸게 밀려오는 이국의 과일과 생선들을 지금의 농어촌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으로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린다.

포도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포도밭 마을 사람들은 포도와 함께 살아간다. 포도는 이웃의 일인 동시에 고장의 일이다. 아마 이런 것을 경제학에서는 ‘간접피해’라 하는가 보던데, 그 간접의 문제가 농민과 농촌에는 삶의 직접 문제이자 생존의 문제임을, 솔직하게 인정이라도 하면 부아라도 덜 치밀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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