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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의 유혹

지난 몇 주간 정치 관련 기사의 패턴은 소위 ‘주석 달기’ 구조의 반복이었다. 정치인 누구가 어떤 공개 석상에서 이러저러한 발언을 한다. 이 발언을 A라고 하자. 그 즉시 뉴스 포털과 SNS 등이 A와 관련된 수많은 논평으로 도배된다. 대부분은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의 메시지들이다. 어떻게 A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냐고, A가 이루어진 맥락과 배경을 삭제한 채 A를 끊임없이 해석한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곧 A가 어떤 맥락이었는지 정치인의 발언 A’가 나타난다. A는 어떠어떠한 맥락이었으며, 이러한 의미였으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가 나온다. 또한 A를 A-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반대 정치세력의 공작이나 오독이라는 공격이 논평으로 나온다. 그럼 다시 A’라는 수사에 대해 수많은 논평이 계속된다. A부터 A’’’까지. 남아있는 건 맥락과 의도가 아닌 감정, 그리고 A라는 단어나 문장에 대한 수많은 주석밖에 없다.

논문을 쓰다 보면 각주나 주석을 수없이 많이 달게 된다. 이러한 꼬리말을 쓰는 건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논의의 방향을 확실히 잡기 위함이며 동시에 논의의 신뢰도를 담보하기 위함이다.

내가 장르 연구자인 만큼 편안한 방식으로 예를 들자면 이렇다. 우리는 흔히 ‘판타지 영화’나 ‘판타지 소설’, 또는 ‘판타지스럽다’거나 ‘판타지 같은 상황’이란 말을 사용한다. 학계에선 이러한 문장 속 ‘판타지’의 의미를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한다. 문학적으로 현실과 다른 모든 은유나 공상을 ‘판타지’라고 통칭할 수도 있고 정신분석학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판타지라고 할 수도 있다. 이 판타지는 서양의 판타지일 수도 있고 동양적 환상 개념인 기(奇), 이(異), 괴(怪)일 수도 있으며, PC통신 발달 이후 인터넷 문학에서 주로 사용되고 조합된 서브컬처적 판타지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세부 정의를 보고 “그거 모두 다 판타지 아냐?”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상에선 이렇게 범박한 정의를 내리더라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여 환영받는다. 그러나 학계는 다르다. 모든 것을 긍정하고 포용하는 방식에선 어떤 토의도 진행되지 못한다. 의미가 명확해야 그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논문에서는 수많은 연구와 연구를 연결하는 각주를 선호한다.

그러나 주석엔 함정이 있다. 주석은 그 자체로 주장이 아니고 보조에 불과하다. 수많은 주석과 각주가 누적된다는 건 중심의 이야기가 한 번에 전달되지 못한 채 수많은 필터와 보조를 거쳐야만 전달된다는 뜻이다. 수많은 보조가 필요하다는 뜻은 이미 그 말들이 보편적인 정서를 획득하지 못한 채 정치인 개인, 또는 집단의 편견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폐쇄적으로 구성되었단 뜻이다. 특히 정치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이익관계를 관통하는 만큼 보다 더 보편적인 언어로 명료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주석 달기가 계속된다는 것은 이러한 전달 과정이 삐걱거린다는 방증이다.

대선이 다가오는데 거대한 흐름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끊임없는 각주와 주석만 난무한다. 지금이라도 각 진영에선 보다 더 명쾌하여 각주 없이 읽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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