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튜 본이 국내에서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영화 <빌리 엘리엇>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영화는 여자아이는 발레를, 남자아이는 권투를 배워야 하는 탄광촌에 살고 있는 소년 빌리가 “발레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주위의 편견 속에서도 발레를 놓지 않고 끝내 로열발레학교에 입학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어엿한 무용수로 성장한 빌리가 주역을 맡아 무대 위에서 힘차게 도약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죠. 마지막 장면에 사용된 이 작품이 바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중 백조들의 군무 | YouTube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기록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발레리나들의 전유물이었던 ‘백조’역을 남성 무용수에게 맡긴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30여 개의 상을 휩쓸었고, 초연이 26년이나 지난 지금도 공연되고 있는 ‘메가 흥행작’입니다. 현대무용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오늘 이 작품을 탄생시킨 매튜 본을 ‘안무가 시리즈’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만나 봅니다.
■실사판 ‘빌리 엘리엇’
안무가 매튜 본 ⓒ EdwardScissorhandsTour | Wikipedia
매튜 본의 삶은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 명문학교에 입학하고, 무용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까지, 영화 속 빌리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런던에 살던 열네 살 소년 매튜 본은 단짝 친구와 함께 38번 버스를 타고 런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곤 했습니다. 주로 들렀던 곳은 첫 공연이 시작되는 공연장이나, 호텔, 무대 입구였죠. 어린 본은 극작가와 배우들의 사인을 받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거든요. 들어본 적 없는 극작가의 사인을 받으면, 그 사람이 누군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매튜 본은 자신의 학창 시절을 ‘일종의 이중생활’이라고 회상합니다. 학교에서는 춤이나 노래와는 큰 접점이 없어 보이는 학생이었지만, 수업이 끝나면 청소년 클럽에서 공연 연습을 주도하고, 주말에는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교회에 가곤 했거든요.
매튜 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영국의 국립극장에서 안내원 일을 시작합니다. 혼자서 오페라, 발레,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닐 정도로 공연에 대한 사랑이 깊었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지요. 본은 함께 안내원으로 일했던 동료를 통해 전문적인 무용교육에 대해 알게 되고, 이후 22살에 영국의 명문 예술학교 라반센터에 입학합니다. 본은 라반센터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전문적인 무용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라반센터에 입학한 본은 실기뿐 아니라 무용사와 안무법, 미학 등 다양한 학문을 접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정말 많은 공연을 보러 다녔고요. 본은 라반센터를 졸업한 후 학교 부설의 무용단 ‘트랜지션스(Transitions)’에 입단해 무용수로 활동합니다. 또래들로 구성된 트랜지션스에서는 열정적으로 서로의 춤과 안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당시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경험은 기술적인 부족함을 느끼던 본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용수로서 저를 믿어준다는 사실, 제가 무대에 재능이 있다고 라반센터에서 인정한다는 사실을 처음 느낀 것이 바로 트랜지션스에서였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그렇게 생각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지요.”
본은 1986년 ‘스스로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데 마음을 모은 학부 동료들과 함께 ‘어드벤처스 인 모션 픽쳐스(Adventures in Motion Pictures, 이하 AMP)’를 창단합니다. 총 7명의 친구들로 구성된 AMP는 상임 안무가 없이 단원들이 안무와 출연을 모두 겸했는데요. 첫 작품부터 호평을 받아 금방 이름을 알릴 수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공연 요청이 계속 들어와 꾸준히 무대에 설 수 있었고요. 본도 <오버랩 러버스>, <벅 앤 윙>, <스핏파이어> 등 안무작들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매튜 본의 초기 작품들은 현재 ‘얼리 어드벤쳐스’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연되곤 한다 | YouTube
■탁월한 이야기꾼
AMP는 1991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습니다. 단체와 색깔이 맞지 않아서,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고 싶어서, 혹은 다른 무용단과 작업을 하기 위해서, 멤버들이 AMP를 떠나게 된 것인데요. 매튜 본은 첫 단독 공연 <도시와 시골>을 발표하고 독자적으로 AMP를 이끌어 나가게 됩니다.
1년 후, 매튜 본은 오페라 노스의 예술감독 니콜라스 페인에게 뜻밖의 제의를 받습니다. 발레 <호두까기 인형>의 100주년 기념 공연에 올릴 ‘새로운 호두까기 인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요. 본은 <호두까기 인형!>을 시작으로 낭만발레 <라 실피드>를 원안으로 한 <하이랜드 플링>을 비롯해 <백조의 호수>, <신데렐라>등 고전을 그의 시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현재까지도 본은 고전을 재료 삼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무용을 넘어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동명의 희극을 소재로 한 <미드나잇 벨> 등 문학으로도 그 범위가 확대됐죠.
매튜 본의 신작 <미드나잇 벨> 트레일러.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 YouTube
고전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현재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요. 미래에도 ‘새로운 고전’에 대한 요구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많은 작품들 중에 매튜 본의 작품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는 ‘남자 백조’의 등장으로 입소문을 탔습니다. 그러나 본의 <백조의 호수>가 영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성별 반전에만 있지 않습니다. 본은 <백조의 호수>에 ‘현대의 영국 왕실’이라는 소재를 끌어와 비어있던 줄거리에 개연성을 더하고, 인물의 행동에 논리를 부여했습니다. 운명적인 사랑으로 그려지던 백조와 왕자의 관계는 보수적인 왕실의 분위기에서 억눌린 왕자의 욕망이 투사된 관계로 그려졌죠.
매튜 본의 <하이랜드 플링> 하이라이트 영상 | YouTube
공기 정령이 등장하는 낭만발레 <라 실피드>를 재해석한 <하이랜드 플링>은 배경을 스코틀랜드의 클럽으로 옮기고 주인공에게만 정령이 보이는 이유를 스코틀랜드에 퍼져있던 마약 문제를 가져와 설명했습니다. 관객의 삶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고전의 환상들이 현실을 덧입으면서 세밀해질수록, 이야기는 관객과 가까워집니다. ‘아는 것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의 힘은 막강하고요.
“우리는 <지젤>이나 <라 바야데르>를 새롭게 만들어 보려는 발레단이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안무만 새로 하는 게 되는 셈이지요. …우리가 뭔가를 선택하는 이유는 단지 그 안에 좋은 이야기와 구조, 음악 등이 있기 때문이고 그다음에 그것을 가지고 작업합니다.”
이미 있는 작품을 재해석하는 본의 작업을 진부하고 안전한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분명 존재합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무용 비평가 클레멘트 크리스프는 “나는 그를 진지하게 안무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영악한 연출가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그가 아주 훌륭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입니다.
■대중과 가까이
미국의 배우이자 댄서 프레드 애스테어. 패션 아이콘으로도 유명했다 | Wikipedia
매튜 본이 잊지 못하는 기억 중 하나는 십 대 시절 헴스테드에 위치한 극장에서 프레드 애스테어가 나오는 영화를 하루 종일 본 것입니다. 미국의 배우이자 댄서인 프레드 애스테어는 당시 미국 영화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인물인데요. 본은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틀어준 영화를 통해 프레드 애스테어를 알게 되었고, 좋아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쭉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확신”할 만큼 당시의 기억은 그에게 강렬합니다. 지금까지도 프레드 애스테어를 로열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지낸 프레드 애쉬튼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안무가로 꼽을 정도니까요.
이처럼 매튜 본의 예술 세계는 많은 부분 대중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본은 애쉬테어에게 일상적인 동작으로 보이던 움직임이 결국 춤으로 피어나는 애쉬테어의 스타일과,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춤을 추는 법을 배웠습니다. 본이 빠져있었던 월트 디즈니 영화는 그가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고요.
작품의 소재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매튜 본의 초기 대표작인 <스핏파이어>는 남성 속옷 광고에서 얻은 ‘포즈를 취하는 남자‘라는 아이디어에서 발전되었습니다. 흰 속옷을 입은 네 명의 남자 무용수들이 근육을 과시하고, 포즈를 취하는 이 작품은 네 명의 발레리나가 등장하는 낭만발레 <파 드 캬트르>를 착안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1992년에는 영화감독 히치콕의 <레베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소재로 한 <데들리 시리어스>를 발표했습니다. 매튜 본은 이후 <백조의 호수>에서도 히치콕의 <새>를 오마주한 장면을 삽입하기도 했지요.
링크 ▶ 매튜 본의 <스핏파이어>. 무용수의 인원이 4명에서 6명으로 확장된 버전이다 | 새들러즈웰스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그의 다양한 관극 경험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습니다.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기존의 무용 작품들과 달리 매튜 본의 작품은 친절하고 직설적이며, 짜임새 있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유머 코드도 들어가 있어 그의 초기 작업은 단지 ‘웃긴 발레’로 여겨지기도 했지요. 이후에는 상업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요.
그러나 “등장하는 인물들끼리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보다는 무대에 올려서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처럼, 본의 작품은 관객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무용이 익숙하지 않은 뮤지컬과 연극 관객에게도 호평을 받는데요. 무용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을 가졌고, 뮤지컬계의 권위 있는 상인 토니상을 수차례 수상했습니다. 실제로 본은 <올리버!>, <메리 포핀스>,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의 뮤지컬에 안무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새로운 탐험을 시작하다
매튜 본의 <가위 손> 공연 장면 ⓒ Edward Scissorhands |flickr
매튜 본은 2002년 AMP를 떠나 ‘뉴 어드벤쳐스’를 창단했습니다. 뉴 어드벤쳐스는 상주하고 있는 새들러즈 웰즈 극장을 포함해 전 세계의 여러 극장에서 활발히 투어를 갖고 있습니다. 공연되는 작품도 그의 초기작들부터 신작들까지 다양합니다. 매튜 본은 초연 후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수정하는 안무가로도 유명합니다. <백조의 호수>도 재정비를 위해 2014년 잠시 투어를 중단한 적 있죠.
또 그는 <백조의 호수>를 포함해, <카맨>, <빨간 신>, <로미오와 줄리엣> 등 자신의 작품을 영상으로 남기고 있는데요. 본은 “공연예술계에 일어난 ‘디지털’ 붐이 춤의 영역을 넓혔다”고 이야기하면서, “(산업으로서의 무용이) 현재 놓아버리면 안 되는 분야”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뉴 어드벤쳐스는 LG아트센터에서 ‘매튜 본 컬렉션’을 통해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났습니다.
30년이 넘게 안무가로 활동한 매튜 본의 위치를 굳이 집어보자면, 뮤지컬과 연극, 무용 그 사이 어딘가가 될 것입니다. 그가 탐험한 장르는 모두 그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그의 탐험이 어디를 향할지, 여정의 끝에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자료|YouTube, Wikipedia, flickr
참고|<매튜 본과 그의 날개 AMP>, 앨러스테어 맥컬리 엮음, 어드북스, 2005
“Coming on in leaps and bounds”, 2000. 9. 16, 가디언지
“Matthew Bourne: dance isn’t ‘taken as seriously as I’d thought’”, 2021. 5. 6, 가디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