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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 사실은 경력 확장 아닐까

입력 2022.01.05 03:00

수정 2022.01.0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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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살림 재택의료센터의 간호사, 재활치료사들과 우리의 일년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무릇 직원이라면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를 ‘원장과의 일대일 면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직원들은 재택의료를 담당하면서 느낀 점들이 무엇인지, 내년을 위해 무엇을 더 준비하면 좋을지 최선을 다해 이야기해주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재택의료. 환자의 가정으로 의료인들이 방문하는 것이 재택의료이다. 사실 나도 하고는 있지만, 재택의료를 배운 적은 없다. 의료기관에서의 진료와 환자 가정에서의 진료가 어떻게 다른지 경험적으로 알아가고 있을 뿐. 게다가 한국에선 아직 재택의료가 온전한 제도로 자리잡은 것도 아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제와 일차의료 방문진료제를 통해 방문진료(왕진), 방문간호를 나가고 있지만 몇 년째 시범사업 상태이고, 우리의 방문재활은 그나마 시범사업으로조차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환자의 가정으로 처음 방문하는 날엔 가능하면 두 명 이상의 직원이 같이 나가려고 하지만, 그것은 여유가 있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다급하게 걸려오는 전화에 응답할 수 있는 직원들이 동시에 두 명인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경우 나도 직원들도 혼자 일하러 가게 된다.

의료와 돌봄 그 중간 어딘가 애매하게 걸쳐 있는 재택의료의 영역은, 아직 안정적이지 않은 제도, 의료기관과는 완전히 다른 ‘환자의 집’이라는 낯선 근무 공간, 거기서 혼자서 일하는 의료인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경계가 더욱 불분명해지고 모든 것은 협상거리가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일은 내 일인가, 네 일인가? 그렇게 일을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우리는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행정적으로, 임상적으로, 윤리적으로? 이런 질문에 답하기 힘들어서 지금껏 의료는 외래·입원이라는 방식으로 환자를 자신의 가정과 삶에서 유리시켜 진료해왔던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우리 업무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고, 업무의 경계는 매일 무너지고 다시 생겨난다.

틀 안에서 일하는 것과 틀 밖 혹은 틀의 경계에서 줄을 타면서 일하는 것은 너무 다르기에, 나는 직원들의 소진을 걱정하였으나, 반짝이는 눈빛으로 ‘보람있다, 재미있다, 도움이 되어 기쁘다, 내가 하는 일로 미래의 의료·돌봄 정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고 우리 직원들은 얘기했다.

살림 재택의료센터에서 일하는 이런 직원들 중에는 ‘경력단절’ 여성이 많다. 아이를 낳고 키우거나 부모님을 모시느라 일을 쉰 여성들이다. 간호사, 사회복지사, 재활치료사로 다시 돌아와 일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나는 이게 ‘경력단절’이 맞나 싶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부모·시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유급 노동을 중단하고 무급 노동으로 들어가곤 한다. 특히나 돌보는 직종으로 사회적으로 정의되는 이들은 더욱 가족 돌봄으로 잘 불려간다. 으레 잘 돌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지고, 전문직이라기에는 높지 않은 급여가 경력 중단의 근거가 되곤 한다.

그런 그녀들이 ‘돌봄’을 공적으로 제공하는 재택의료, 통합돌봄이라는 영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의대 다닐 때 교수님들께 ‘직접 환자가 되어보는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들은 적 있는 나는, 마찬가지로 ‘보호자가 되어 보는 경험’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호자로서 누군가를 돌보고 타인의 욕구를 헤아리고 자원을 연결해 본 경험은 소중하다. 그러고 보면 이제 막 제도화되기 시작하는 이 재택의료, 통합돌봄 영역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절묘한 균형감을 가지고 일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어쩌면 경력단절이 아니라 ‘경력의 확장’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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