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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원자력 발전으로 돌아섰다?…“돌아선 유럽 국가는 없다”

강한들 기자
로이터 통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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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최근 회원국들에 보낸 녹색분류체계(그린택소노미) 초안에 2045년까지 건설 허가가 난 원자력 발전을 ‘녹색투자’로 분류하는 내용이 들어가면서 원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지난달 30일 발표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제외된 것을 비판하며 ‘원전 복귀’가 세계적 추세라고도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전문가들 얘기를 종합하면, 세계가 다시 원자력 발전을 늘릴 가능성은 크지 않으며, 한국 역시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가는 상황에서 원전을 다시 늘리는 것은 오히려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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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EU 소속국 중 ‘탈원전’ 기조를 폐기하고, 다시 원전을 활성화한다는 방안을 밝힌 국가는 없다. 이탈리아는 35년 전인 1987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한 탈원전 1호 국가다. 오스트리아 역시 1978년 국민투표로 원전 가동을 무산시킨 이후, 1997년에 핵 없는 나라로 남기로 결정했다. 독일은 마지막 남은 원전 6곳 중 3곳을 지난해 말 가동 중단했고, 올해 말까지 나머지 3곳도 폐지할 계획이다. 벨기에는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기로 발표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원자력 비중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지만, 원전을 아예 없애겠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일각의 의견과 같이 ‘EU가 원전으로 복귀했다’는 주장을 하기엔, 돌아선 국가가 있다고 보기 힘든 것이다.

EU가 원전을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한 데에는 프랑스 역할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녹색분류체계는 어떤 경제활동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지를 정해, 그 부문으로의 투자를 유도하는 기준이 된다. 프랑스는 전력 생산의 70%를 원전에 의존하고, EU 국가 중 원전 수출 기술을 가진 유일한 국가다. 프랑스 감사원은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현재 건설 중인 플라만빌 3호기와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해 약 1200억유로(한화 약 162조4000억원)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 추진하려는 6기의 신규 원전도 EDF 자체 추정으로 약 460억유로(한화 약 62조2600억원)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EDF는 지난해 6월 기준 410억유로(한화 약 55조4900억원)의 부채가 있어, 열악한 재정구조상 민간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헌석 정의당 녹색위원회 위원장은 “프랑스와 같이 핵발전소를 수출하는 나라들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프랑스가 핵발전소가 거의 없는 동유럽 지역 국가들을 설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개된 EU 녹색분류체계 내용은 ‘초안’ 수준이다. EU가 분류체계를 확정하고, 이를 시행하는 데까진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이달 12일까지 전문가 패널의 검토가 끝나면 EU 집행위는 이달 중 EU 의회와 이사회에 녹색분류체계 수정안을 제출한다. EU 의회는 최대 6개월간 검토해 승인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이미 오스트리아, 유럽 의회 녹색당 그룹 등이 유럽사법재판소에 EU 집행위를 제소하는 것을 검토 중으로, 판결까지 수 년이 걸릴 수 있다.

이처럼 녹색분류체계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금융계에서 EU의 녹색분류체계를 사용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유럽의 안전 규정이 강화되면서 원전을 짓는 데 드는 비용은 상승했다. 원전의 경제성이 떨어진 상태인 것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핀란드에서 준공된 올킬루토 원전, 프랑스에서 건설 중인 플라만빌 원전은 애초 시작할 때보다 건설 비용이 2~3배 늘고, 공사 기간도 늘어 비용과 (투자 시) 리스크가 커졌다”며 “금융기관 자체 택소노미가 운용된다면 원전은 거의 자동적으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대형 원전은 향후 비율을 늘려갈 재생에너지와 조합하기 어려운 에너지원으로 지목된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일조량·풍량 등에 따라 시간별 발전량이 크게 변할 수 있다. 이런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조합해 사용하려면 재생에너지가 에너지를 생산할 때는 발전량을 줄였다가,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줄어드는 시간에는 짧은 시간 안에 발전량을 늘릴 수 있는 발전 방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원전은 전력 수요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하기 어렵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는 “수요에 따라서 출력을 늘렸다 줄였다 할 경우 온도, 압력 조건이 변한다”며 “그럴 경우에 기기 피로도가 높아지고, 손상이 일찍 와서 수명이 단축돼 안전과 경제성에 모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을 같이 사용하는 경우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유럽은 EU 35개국이 하나의 전력망으로 연결돼 있어 갑자기 발전량이 늘거나 줄어도 유럽 전체의 전력망 차원에서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은 ‘단일계통망’이라 다른 나라와 전력을 사고팔기 힘들다. 우리와 비슷한 단일계통망인 영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2020년 영국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38%, 그 중 풍력이 24%로 증가하면서 전력망의 안정을 위해 5개월간 대형 원전인 사이즈웰의 출력을 50%로 줄여 가동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국 전력망 운영기관(National Grid)은 발전사업자 손실보상금으로 약 1200억원을 지출해야 했다. 원전은 건설 시 막대한 비용이 들어 운영하면서 생산한 전기를 팔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데, 출력을 줄여서 운영하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석광훈 위원은 “2030년이 되면 한국도 대형 원전의 출력을 줄여 가동,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 될 것”이라며 “매년 1조원에 가까운 손실을 봐야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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