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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입력 2022.01.06 03:00

수정 2022.01.0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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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상식도 바뀌지만 ‘방향’은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지식이 ‘상식’이다. 손에서 가만히 놓은 돌멩이는 땅으로 떨어진다는 것, 지구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백신이 감염병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상식이다. 이런 상식에 많은 이가 동의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은 또 아니다. 돌멩이가 저절로 하늘로 치솟는다고 믿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만,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은 지금도 간혹 있고, 다양한 생명이 진화의 과정 없이 한순간 등장했다고 믿는 사람,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나의 상식이 세상의 상식과 다르면 먼저 나의 상식을 의심해 볼 일이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과학 지식이 아닌 상식도 많다. 식탁에서 코 푸는 사람을 예의 없다 생각하며 후루룩 국물을 들이켜는 나를 그 외국인은 거꾸로 예의 없다 노려본다. 코 파는 것은 어디서나 지저분한 것이지만 귀 파는 것은 곳에 따라 ‘우웩’의 정도가 다르고, 꿈틀대는 산낙지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우리를 어떤 외국인은 경악하며 바라본다. 한여름 복날 보신탕 한 그릇 먹어야 한다는 과거의 상식은 이제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되었다. 때와 곳이 바뀌면 상식도 달라진다. 주변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다면 먼저 나의 상식의 기준을 가만히 돌아볼 일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흙, 물, 공기, 불의 순서로 우주의 중심을 향해 움직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돌멩이가 아래로 떨어지는 이유는 흙 원소가 공기에 비해 우주의 중심을 향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균일하게 섞여 있는 상황에서는 우주의 중심에서 시작해 흙이 둥글게 뭉쳐 지구가 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또,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니 지구 표면인 땅도 어디 다른 곳으로 움직일 이유가 없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왜 땅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다. 오래전 동양은 달랐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세계관에서는 네모반듯한 땅을 둥근 하늘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 우주의 형태였다. 모든 것은 당연히 아래로 떨어지니, “땅 자체는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동양에서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상식이 바뀌면 질문도 바뀐다.

예외 없이 모든 이가 동의하는 진실은 드물다. 모든 이가 동의하는 것이 상식이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생명의 진화도 상식이 아닌 셈이다. 기준을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대부분의 사람’으로 바꿔도 문제는 남는다. 얼마나 많아야 ‘대부분’인지, 이성적 사고의 기준은 또 어떻게 정할지 분명치 않다.

무엇이 올바른 상식인지 헷갈릴 때는 시간에 따른 변화의 방향에 주목해 보자. 여러 지식 중 일부가 세월의 힘을 이겨 상식이 된다. 한번 상식이 된 과학 지식이 시간을 거슬러 다시 거짓이 되는 일은 무척 드물다. 평평한 지구와 생명의 한순간 창조가 다시 상식이 되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과학의 바탕이 되는 상식의 형성은 긴 시간 척도에서 보면 누적적으로 보인다. 생명의 진화를 의심하고 기후 변화를 부인하는 사람은 시간에 따른 과학의 발전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무는 셈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지구가 다시 우주의 중심에 놓여 주변에 태양을 거느리는 미래는 오지 않는다.

지식이 상식이 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과정 자체다. 그나마 우리가 과학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내용이 아니라 과정 때문이다. 과학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 흔들리지 않아서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서 믿을 수 있는 것이 과학이다. 잘 흔들리지 않으면 어떻게든 흔들어 보려는 수많은 노력이 모이고, 크게 흔들려 쓰러진 갈대는 과학의 상식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흔들어도 잘 흔들리지 않는 갈대 여럿이 서로 몸을 엮어 큰 다발이 되면, 그렇게 만들어진 상식의 다발 위에 또 새로운 갈대가 자란다. 나의 지식을 모두의 상식으로 만드는 과정의 이름이 과학이고, 새로운 과학의 싹은 상식의 토대 위에서 다시 자란다.

자신이 상식이라고 믿고 있다고 정말 상식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도 믿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때와 장소가 바뀌면 상식도 바뀌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래도 방향이 있다.

뭐라도 풀려면 뭐라도 물어야 하고, 무얼 물을지는 내가 가진 상식이 정한다. 답이 엉뚱한 사람, 질문이 엉뚱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상식을 의심해 볼 일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에 사는 사람은 아닌지, 가만히 저울질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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