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관심많은 2030 유권자 100명의 목소리
“무관심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고민 때문”
2022년 대선 밸런스 게임 하나.
“국민의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중 하나를 고르라면?”
경향신문과 정치플랫폼 섀도우캐비닛이 함께 하는 ‘무가당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들에게 물었다. 김서경씨(21)는 “우와, 진짜 어렵다”고 운을 뗀 뒤 “이 정도는 돼야 밸런스 게임이지”라고 웃었다. 유력 대선 후보 두 명의 당을 바꿔도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책적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코 앞으로 다가온 20대 대통령 선거. 뽑을 사람을 정하지 못해 한숨만 내쉬거나, 마음을 정했어도 아쉬움이 남는 ‘2030’ 청년들이 모였다. ‘무가당 프로젝트’는 ‘당이 없는, 당을 잃은, 당이 사라진 무당층’ 청년들을 지칭하기 위해‘무(無)’ 와 ‘당’을 합쳐 만들었다. “나만 찍을 사람 없어…”라고 고민하는 청년들이 비슷한 생각을 한 또래들과 만나 속 얘기를 털어놓았다.
무가당 프로젝트에는 1983년생부터 2003년생까지 총 100명이 모였다. 이들은 지난 11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해 ‘정치살롱’을 열었다. 카메라 앞에 앉아 화면을 통해 처음 자신을 소개하고 무가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를 밝히는 자리였다. 무가당 프로젝트는 화상회의 방식의 정치살롱을 대선 전후로 6차례 진행하고, 온라인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무가당 멤버들의 정치 토크는 경향신문이 직접 제작한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관심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고민 때문
20~30대 청년들이 지지 정당 혹은 후보가 없다면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다. 하지만 무가당 멤버들은 정당에 참여해왔거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대학(원)에서 ‘정치’를 전공하는 이들도 있다. 정치에 관심은 많지만 이번 대선에서 자신을 대변해줄 정치인과 집단을 찾지 못해 괴로웠던 것일 뿐. 뽑고 싶은 후보가 없어 기권할 생각이라는 이들도 있었지만 ‘무조건’, 적어도 ‘가급적’ 투표에 참여할 것이란 이들이 대부분이다.
올해 막 성인이 된 새내기 대학생 김영서씨(19)는 “첫 투표인데 뽑을 사람이 너무 없어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무가당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씨(39)는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정치가 나의 생활과 삶에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정치가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하게 되던 차에 무가당 멤버로 참여하게 됐다.
박형우씨(25)는 “대선과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중요한 해인데 ‘나는 시민으로서의 자세가 준비돼 있는가’라는 고민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론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무가당에 참여했다”고 했다. 박씨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차이를 견디면서도 호기심을 계속해서 가져가는 성숙한 시민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무가당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인이 된 뒤 처음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게 된 김유진씨(20)는 “처음 대선에 참여하는데 뭔가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성인인데 이래도 되나’하고 고민하던 때에 무가당 프로젝트의 귀여운 캐릭터가 말을 걸어줘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됐다고 했다.
■“미래는 없고, 흠집 내기와 혐오만 있다”
이번 대선을 두고 정당도 후보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구체적인 공약은 없고, 주요 대선후보들 간의 흠집 내기와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태도에 실망했다는 것이다. 서울 중심의 의제 설정에 소외되는 지방의 청년들의 허무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무가당 멤버들은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고를지 정말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고민이 많지만 무가당 멤버들은 정치와 이번 선거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어려웠다. 극단으로 갈리고 있는 정치지형 탓인지 친구 사이에서도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공적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관심은 있지만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이 기피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극단적 혐오 없이 서로의 생각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송지선씨(35)는 “정치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주변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가 됐다”며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한데 이야기 꺼내는 순간 ‘아웃’되기 좋은 주제이고, 잘 알거나 모르거나 수준을 맞추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무가당 프로젝트가 다양한 이슈를 관심사나 지식 수준에 상관없이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송씨는 설명했다.
■그들이 아니라 나를 대변하는 후보 찾는 과정
무가당 멤버 중에는 원래 지지하는 정당이 있었다는 이들도 많았다. 국민의힘 당원이기도 한 김은설씨(22)는 표를 던질 후보를 정하기는 했지만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아는 사람들과 똑같은 이야기만하고 서로 공감만 하고 끝이 나는 것 같았다”며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간극을 줄여보고 싶었다”고 했다.
정의당 당원인 최재영씨는 “조국 사태와 페미니즘에 대해 정의당이 맞지 않는 정책과 발언이 나오면서 계속 지지해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됐다”며 “그런 중에도 거대 양당의 두 후보가 서로의 도덕성을 깎아내리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굉장히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효민씨는 “그동안 민주당을 지지해왔는데 이제는 사표가 되더라도 정의당을 뽑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며 “20대 여성이 나를 대변하는 정당을 뽑아야 할 텐데 고민”이라고 했다.
지지하는 정당도 없고, 정치적인 색채도 다로 없었던 이들도 ‘무가당’으로서 답답함을 이야기 했다.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그동안 빨간색(국민의힘) 아니면 파란색(더불어민주당)을 뽑아왔는데 지지하는 정당도 없고 후보들마다 이런저런 이슈가 터지니 누구를 골라야 할지 더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희원씨는 “1번 아니면 2번밖에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 민주주의가 맞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했다. 거대 양당 중심으로 진행되는 대선을 놓고 ‘사실상 양당제’라고 판단한 이들이 자신을 제대로 대변해줄 정당을 찾지 못해 결국 무당층이 된 이들도 있는 셈이다.
무가당 프로젝트를 통해 대선 전까지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이들도 많았다. 손상현씨(24)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는 모두 무가당이 아니라 달달하게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프로젝트 참가자들은 기후위기, 젠더갈등, 경제적 불평등, 노동·교육·인권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을 보였다. 무당층이 된 이유나 이번 선거를 앞둔 생각, 지난 대선 당시의 선택 등을 놓고 구체적인 설문조사도 진행됐다. 무가당 멤버들의 의견이 담긴 설문 결과는 여론조사 공표 관련 규정에 따라 대선 이후 공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