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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확행’과 ‘심쿵’에 담기 힘든 시대정신

입력 2022.01.28 03:00

수정 2022.01.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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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 ‘소확행’과 ‘심쿵’에 담기 힘든 시대정신

대통령선거가 다가오고 있지만 주식시장에 미치는 반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대선 후보의 사돈의 팔촌쯤 되는 인사들이 엮인 투기적 정치 테마주들이 횡행할 뿐 선거 결과나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투영되고 있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주식시장은 온갖 기대와 우려, 때로는 막연한 공상까지 주가에 반영하게 마련인데, 이번 대선은 무덤덤한 시장의 반응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주식시장이 대통령선거에 뜨겁게 반응했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정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5년 단임 대통령 직선제 선거가 처음 치러졌던 1987년 대선의 최대 정책 수혜주는 건설주였다. 노태우 정권의 가장 중요한 경제 공약은 ‘200만호 주택건설’이었다. 분당과 일산 신도시가 당시 건설됐다. 대규모 주택건설은 나름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정책이기도 했다. 1987년은 3저 호황의 후반부로 단군 이래 경기가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였고, 정치적 민주화의 산물이었던 노동조합 활성화로 임금도 빠르게 상승했다.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집집마다 자가용 한 대씩 가지는 마이카 시대가 열렸지만, 중산층이라면 번듯한 집 한 채는 있어야 했다. 수도권 아파트 매입에 요즘과 같은 높은 가격 장벽이 있던 시기도 아니었던지라 200만호 주택건설은 한국 중산층의 로망과 맞닿아 있었다.

주식시장, 대선 이벤트에 시큰둥

1992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 정권에서는 토지와 부동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자산주들이 훨훨 날았다. 김영삼 정권은 사회주의 블록의 몰락 직후에 출범했다. 이념 대결은 끝났고, 시장이 최고의 선이던 때였다. 개방과 규제완화로 대표되는 워싱턴컨센서스가 한국에 이식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경쟁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은 철폐돼야 할 적폐 취급을 받았다. 1994년 경제기획원 폐지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더 이상 경제는 ‘기획’의 대상이 아니었다.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금융시장의 개방은 속도를 냈고, 삼성그룹은 자동차산업 진출에 성공했다. 한편으론 규제완화 차원에서 적대적 M&A를 가로막았던 ‘증권거래법 200조’ 폐지 논의가 진행됐다. 한국에서도 적대적 M&A가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자산가치 대비 주가가 낮은 자산주 주가가 급등할 수 있었다.

1997년 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 정권 때는 벤처 열풍이 불면서 코스닥시장이 최대 정책 수혜주로 부각됐다. 재벌의 선단식 경영은 한국의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를 상징하는 구태로 비판받았고, 인터넷의 대중화로 상징되는 IT 혁명에서 촉발된 기술 낙관론은 대안적 성장 모델로서 벤처와 코스닥시장의 부상에 힘을 보탰다.

노무현 정권 때부터 주식시장에서의 정책 효과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시장에 대한 맹신이 가장 강했던 신자유주의의 최전성기와 겹쳤다. 노무현 정권은 정권 차원의 ‘산업정책’이 없었던 유일한 정부였는데, 노 대통령 스스로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간섭하기보다는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별다른 정책이 없었음에도 5년 단임 대통령제 실시 이후 노무현 정권 때의 KOSPI 상승률(+173.6%)이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기억할 만한 경제정책이 없었음에도 주식시장의 성과가 가장 좋았던 건 어쩌면 신자유주의 최고 전성기의 시대정신이 발현된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작은 정부가 경제적으론 좋은 정부이던 시기였다.

노무현 정권 이후로도 정책 수혜주를 찾기 힘들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시장의 자율성이 커졌다는 점이 정책 수혜주가 사라진 가장 근본적 이유였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이 절대 권위를 가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있었지만, 이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지향점이 없었다는 점도 대선이라는 이벤트가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던 이유로 볼 수 있다.

확장재정, 금리 고려 신중할 필요

이번 선거는 유독 비정치적 이슈들이 부각되고 있지만, 제시되는 정책들도 미시적인 내용들로 채워지고 있다. 유력후보들은 ‘소확행’ ‘심쿵약속’ 등의 연성화된 네이밍으로 포장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아쉽다. 이번이야말로 큰 담론이 필요한 선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매개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커졌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시장의 자원배분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당장 궁금한 것은 향후 재정정책의 향방이다. ‘기본’ 시리즈의 여당 공약이 시행되면 재정 부담이 명확하게 더 커질 수 있지만, 야당에서 이야기하는 각종 공약들도 만만치 않은 재원이 필요하다. 당장 야당이 주장하는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도 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보수 정파의 주장도 씀씀이만으로 보면 진보와 구별하기 힘들다. 주식시장은 선거에 시큰둥하지만, 채권시장은 중간중간 민감히 반응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채발행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금리를 끌어올린 것이다.

경제적 진보주의자들은 정부 부채 증가에 대한 거부감이 적겠지만 요즘처럼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는 보다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론적으론 성장률보다 금리가 낮으면 부채 증가에서 비롯되는 부작용이 크지 않은데, 요즘처럼 잠재성장률은 빠르게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는 부채 증가의 코스트가 커진다. 또한 민간 영역에서도 가계부채가 최근 수년간 급증했기 때문에 금리 상승으로 파생될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저출생 고령화에서 비롯된 연금 개혁 역시 정부가 답해야 할 문제이다.

정부의 역할은 보수와 진보 정파의 철학적 가치가 충돌하는 대표적 영역이다. 어차피 시장 만능주의가 설 자리는 없는 듯하다. 진보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보수는 정부의 개입 범위와 자신들의 차별점에 대해 의견을 밝혀야 한다. 이번 선거는 ‘소확행’과 ‘심쿵’이라는 그릇에 담기 힘든 큰 의제들에 대해 책임있는 정치인들이 의견을 밝히는 논쟁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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