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빵바구니' 우크라이나 전쟁시 세계 식량가격 폭등"

박효재 기자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빵집에서 한 주민이 빵을 구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3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빵집에서 한 주민이 빵을 구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전쟁 위기에 몰린 우크라이나는 수세기 동안 유럽의 ‘빵바구니’로 불려왔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인 흑토지대를 가진 덕분에 밀을 대량 생산하고 수출해왔기 때문이다. 국제곡물위원회(IGC)는 우크라이나를 2021~2022년 세계 4위 밀 수출국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는 밀은 물론 옥수수, 보리, 호밀 등 주요 곡물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기도 하다. 특히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저개발국에도 많은 양을 공급하고 있어 세계 식량안보에 중요한 국가로 꼽힌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저개발국 정정 불안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의 주요 공격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 세력과 대치 중인 루간스크·도네츠크주 등 동부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은 우크라이나 곡물 생산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 전쟁 피해가 극심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IG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최대 밀 생산지인 하르키우주(연간 최대 생산량 230만t)를 비롯해 동부 6개 주에서만 약 40%의 밀이 생산된다. 이 지역에서 러시아와 분리주의 반군의 공격으로 밀 생산이 장기간 중단된다면 밀 가격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2020년 기준 밀 2400만t을 수확해 이 중 1800만t을 수출해 세계 밀 수출국 5위에 올랐다. 주요 수입국 중에는 중국과 유럽연합(EU) 등 고소득 국가도 있지만 특히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높은 저개발국도 있다. 유엔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레바논에서 소비된 전체 밀의 약 절반이 우크라이나산이다. 우크라이나 밀의 최대 소비국인 이집트는 2020년 전체 밀 소비량의 약 14%인 300만t 이상을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했다. 말레이시아(28%), 인도네시아(28%), 방글라데시(21%)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도 우크라이나산 밀 의존도가 높다.

우크라이나에서 밀 생산 및 수출량 감소가 세계 각지의 정정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밀 소비량의 10% 이상을 우크라이나산에 의존하는 14개국 중 상당수가 이미 정정불안과 극심한 폭력 사태로 식량 수급 불안에 처한 것으로 파악된다. 내전 중인 중동의 예멘, 10년 넘게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북아프리카 리비아는 각각 전체 밀 소비량의 22%, 43%를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하고 있다. FP는 “예멘, 리비아, 레바논 등 이미 정정 불안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 다시 식량 가격 상승을 겪는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2010년대 초반 식량 가격 상승이 도화선이 된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을 겪었다. 튀니지, 이집트 등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겪은 국가들은 내부적으로 비민주적 정치제도나 부정부패가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히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식량 가격의 급등이 시위 참여 규모를 확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2014년 러시아가 당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해 병합했을 때도 전 세계 밀 가격이 한 달 만에 75% 급등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의 세계 밀 수출 규모는 크림반도 침공 당시보다 현재 두 배 가까이 늘어 현재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격 인상 폭은 2014년보다 더 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U는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면서 유럽이 식량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곡물 공급망 확보 및 수입선 다변화 등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호주 등 대체 국가의 역할도 주목된다. 브랫 호스킹 호주 곡물재배인협회 회장은 현지매체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충돌이 발생하면 사실상 세계 최대 밀 수출국끼리 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라며 “대안으로서 호주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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