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의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서지 정보 중 ‘온다프레스 편집부 지음’을 ‘노동건강연대 기획, 이현 정리’로 바로잡습니다. 2월8일 오후 3시44분 수정했습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과 유가족이 지난 1월1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고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 사망 추모 및 한전 실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음 | 나름북스 | 374쪽 | 1만7000원
2146, 529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
노동건강연대 기획, 이현 정리 | 온다프레스 | 208쪽 | 1만1000원
많은 사람들이 ‘유리 멘털’이란 말을 곧잘 쓴다. 친구 사이 주고받는 이 말엔 ‘강철 멘털’을 바라는 마음이 들어 있다. 그 바람은 사용자나 상급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이 말을 쓸 때는 탄압·억압의 언어가 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 말엔 어떠한 노동 조건도 이의 없이 굳건히 참고 견디라는 ‘암묵적 지시’에다 ‘어떤 상황이든 열심히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근로자의 서사’가 깔렸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곳곳의 노동자들은 책 제목처럼 ‘일하다 마음을 다치’기 일쑤다. 수십년간 투쟁 끝에 육체적 부담으로 발생하는 신체 질환(재해성 외상 등)과 정신 질환은 노동과의 인과성을 어렵게 인정받았다. 정신적 부담에 따른 신체 질환(위궤양 등)이나 정신적 질환(우울증 등)은 여전히 ‘개인이 감당할 몫’이다. 개인이 속한 조직이나 사회가 업무 부담으로 정신적 부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일할 때 ‘신체 따로 정신 따로’가 아니라 ‘신체와 정신이 함께’ 작동한다는 시각에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바라본다. ‘신체와 정신의 동시 작동’은 알기 어렵다. “○○님”이라고 부르는 수평적인 직장문화의 표방이 곧 수평적 직장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수평적 관계를 표방하던 유명 인터넷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 노동자는 일한 지 2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규칙한 밤샘’ ‘팀장 컨펌 때까지 대기’ ‘콘셉트 변경 때 새 작업’ ‘직책보다 과중한 업무’ ‘팀 내 은근한 비하, 편 가르기’ 등을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이 노동자는 이 문제를 내색하지 않았다. 자살 직전까지 밝고 책임감이 강한 모습을 보였다.
죽음 뒤 회사 돌아가는 꼴은 어떤가. 회사는 제대로 된 조사도, 책임지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이 사례를 담당한 연구자는 이 노동자의 동료들, 너무나 멀쩡해 보이던 동료들에 대해 야속함과 배신감을 느낀다. 사망 노동자의 동료가 다른 팀 동료에게 항우울제를 건네는 걸 보고 “다들 힘들구나,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답답해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정신 건강 문제란 게 그렇다. 다들 혼자 감내한다. 주위에선 ‘마음의 감기’ 같은 일로 치부한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듣는다. 기껏 건네는 게 ‘힘내’라는 응원이다. 연구소는 쉽게 단정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당신이 극복할 문제’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직장에서 생기는 정신 건강 문제나 직무 스트레스 문제를 각자가 현명하게 다뤄야 할 문제, 개인의 멘털 문제로 보고 억누르는 사회적 분위기에 반기를 든다. ‘유리 멘털’을 단단히 다져서 이겨낼 문제가 아니라, 고쳐야 할 대상이자 원인인 일터 문제로 시선을 돌리자고 말한다.

산재 질환 ‘스스로 감당’하는 현실
정신적 문제도 ‘마음의 감기’ 치부
사고 생기면 ‘부주의’탓으로 몰아
올 대선에선 아예 이슈조차 안 돼
고칠 대상을 ‘일터’로 시선 돌려야
‘감정노동’ 문제만 있나. 한 콜센터 노동자는 “종일 앉아서 모니터 보며 일하니까 손목이나 목, 허리 등 근골격계 질환도 있고, 코로나로 잘 알려진 것처럼 종일 많은 사람이 밀집해 일하니 호흡기 질환도 많아요. 그런데 이제 콜센터 노동자라고 하면 늘 감정노동만 물어봐요”라고 말한다. 연구소는 다시 구조의 문제를 언급한다. 개인의 ‘인식과 대처’에 집중하는 상담을 두곤 “힐링산업의 일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들은 “번아웃은 다름 아닌 직무 스트레스로 지치고 소진된 양상”을 뜻한다고 말한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는 번아웃을 국제질병분류에 추가했다.
산재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은 사정일지 모른다. <2146, 529>는 새벽과 아침, 고강도의 노동을 하다 “끼여” “깔려” “떨어져” “부딪혀” 죽었다는 이들에 관한 기록이다. 노동자의 죽음을 수식하는 동사는 수십년째 반복된다. ‘2146’은 2021년 산재사망자 수의 추정치다. ‘529’는 산재사망자 2146명 중 사고로 사망하거나 과로사한 노동자의 수를 따로 표기한 것이다. 이게 다가 아니다. 책에 나온, 읽기 고통스러운 죽음의 육하원칙은 모든 죽음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 숫자엔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라고 부르지 못하는 이들’, 즉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화물차주, 자영업자,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황이 빠져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2002년부터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일하다 마음을 다치다>와 비슷한 문제가 놓여 있다. 한국에서 노동자 산재 사망을 다루는 지배적 프레임은 산재 사망을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와 불운, 기업 활동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부수적 피해로 보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잘못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두 책에 공통으로 드러난다.
이 프레임은 여전하다. 노동자의 죽음과 스트레스는 대선 공간에선 아예 이슈조차 되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노동 문제에 관한한 퇴행 기미가 뚜렷하다. 공기업인 한국전력 소속 노동자 김다운씨는 지난해 11월5일 2만2000볼트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봇대에서 일하다 감전돼 중화상을 입고 사투를 벌이다 그달 24일 사망했다. 한전은 사고 책임을 부정했다. 고용노동부가 한전에 부과한 과태료는 3480만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