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2년 만에 독일에 다녀왔다. 내가 독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궁금해했던 것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게 물었던 것도 역시나 코로나19에 대한 국가 대응 정책이었다. 유럽 국가들의 정책 역시 우리만큼 수시로 변하고 있는 차에, 독일에서는 정부의 백신정책에 반대하는 시위가 가장 큰 논란거리였다. 백신 접종이 의무화될 가능성까지 생기면서 시위의 수위도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도 독일 국내외의 소식을 접하면서 시위의 배경과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독일에 머물며 현지 사람들과 종종 식사를 함께하면서 시위의 맥락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들을 수 있었다.

최정애 전남대 교수·소설가
어느 날 저녁에는 가족모임에 초대되어 갔다. 조촐하지만 두 가족이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세대와 성별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예순 넘은 어른도 있었고, 갓 열다섯이 된 청소년도 있었다. 식사 시간은 조용했고, 예의 있었으며, 간간이 웃는 소리가 났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10대 친구는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사회 이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어른들이 각종 국가정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친구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진지하게 경청하더니, 적절한 시점에 자신의 논리를 피력했다. 어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을 들어주었다. 엉뚱한 논리로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논리가 틀렸는지 맞았는지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다. 그 친구에게 말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 다음에야 어른들은 자신의 의견을 다시 개진했다. 모든 이의 관점이 모든 이에게 이해받는 것 같았다.
특히 최근 가장 첨예한 논란거리인 백신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존중의 자세는 돋보였다. 누가 백신패스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는지도 이야기되지 않았다. 그것은 사생활의 영역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백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과 그로 인한 사회적 공포, 두려움과 권력의 상관관계에 대해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반대 축에 서있는 의견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쪽의 의견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좋은 해답이 무언지 찾기 위해서였다.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물론 해답이 없는 문제도 있었다. 그럴 때 그들은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후에는 철학적 담론이 오갔다. 가령 ‘정부정책과 생각이 다른 개인과 공동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든지, ‘정당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의 상관관계’라든지, ‘백신 문제에 대한 전 인류적 대응’이라든지. 그건 독일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단순히 넘겨짚은 ‘자유’라든지 ‘불신’과는 짚이는 지점이 조금 달랐다.
그날 저녁 식사 자리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대화의 과정이 눈앞에 놓인 문제를 다루는 독일인들의 자세처럼 보여서 그랬다. 다양한 연령대와 계층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 오래 봐온 지인이기 때문에 무시될 수 있는 작은 의견도 끝까지 들어주는 것, 의견에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을 적대적인 의견이라고 치부하거나 나만의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는 것. 그것은 나름 오랫동안 경험해왔다고 생각했던 독일에 대해 내가 잠시 잊고 있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는 ‘가족들과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런 종류의 주제들이 불화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은 탓에, 미리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나온 말일 터다. 그러나 논의가 터부시되면 주제에 관련된 자신만의 가치관은 확고해지는 법이다.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해줄 다른 의견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을 방해한다. 차이 나는 관점을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식사가 끝난 뒤 10대 친구는 밝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돌이켜보니 그 친구는 한국의 이모저모에도 관심이 많았다. 한국의 교육제도와 주요 산업에 대해 거침없이 물었고,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말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런 물음과 기다림의 자세는 아마 오랜 시간 단련된 밥상머리 교육이 아닐까, 생각했다. 정책 입안자나 목소리가 큰 오피니언 리더를 만난 게 아니었지만, 그날 저녁 식사는 내 모든 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되었다. 무엇보다 15세 친구가 보여준 진지하고 성실한 눈빛은 내게 희망이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 것인지 느끼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