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5일 제주 강정마을에서 목이 멘 듯 잠시 연설을 멈췄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군기지 건설을 추진한 데 대해 “고뇌와 결단을 가슴에 새긴다”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다음날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이 묻힌 너럭바위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렸다. “사람사는 세상을 만드는 꿈은 노무현의 꿈이고 문재인의 꿈이고 이재명의 영원한 꿈”이라면서…. 7일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아침 회의 말문을 노 전 대통령으로 열었다. “아무리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대의와 미래를 위해 도전한 ‘바보 노무현’의 길을 기억하겠다”면서…. 대선을 한 달 앞둔 미묘한 시점에 세 후보가 앞다퉈 노무현을 소환했다.
대선 주자의 말과 동선엔 메시지가 담긴다. 노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이유도 세 갈래로 갈렸다. 이 후보는 “진화된 새로운 민주정부를 반드시 만들어낼 것”이라며 동지들이 함께하고 함께 책임지자고 호소했다. 지역 균형발전의 꿈을 품은 ‘남부 수도권’ 공약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발표했다. 그의 지지율에 온전히 담지 못한 전통적 지지층(친노·친문·호남)을 껴안으려는 행보다. 윤 후보는 강정마을에서 떠올린 노 전 대통령에게 국민통합과 자주국방을 투영시켰다. 그는 두 달 전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오랜 팬”이라며 노 전 대통령 추모곡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불렀다. 중도·호남으로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랐을 듯싶다. 안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은 진영정치를 떠나 전체 국민의 이익을 우선한 국가지도자”라며 실패에 굴하지 않은 정치 역정을 높이 샀다. 스스로 대선 목표는 “당선”이라고 되뇐다. 10%를 오르내리는 지지율 벽과 단일화 압박을 넘고픈 3등 주자의 마음이 읽힌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사람들은 이념·지역·노사로 갈려 싸웠다. 보수는 현직 대통령을 저주하는 ‘연극판’까지 벌였고, 진보는 친노·비노·반노의 길이 뒤섞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 나무는 그늘도 커서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을 불러내는 대선판을 보며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월이 흘렀고, 역사 속 노무현도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거목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