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의 디아스포라 작가들 - 차학경·민영순·윤진미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차학경, ‘입에서 입으로’(1975), 흑백 비디오, 사운드
1.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환상의 복식조 14라운드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디아스포라 작가들인 고(故) 차학경(1951~1982), 민영순(1953), 윤진미(1960)의 작업을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시각에서 다뤄본다. 후기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은 각기 독자적인 담론이지만, 인종과 젠더, 민족 정체성과 성 정체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식론적, 실천적으로 상호 연대하며 후기식민주의 페미니즘 논의를 이끌어낸다.
유년기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자신이 속한, 그러나 결코 속할 수 없는 장소에서 인종적, 국가적, 젠더적 타자로서 이중 소외를 겪는 이산 여성 작가들의 작업은 생래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3인 작업의 진가는 정치적 면모보다는 자신의 모태공간으로부터 일탈하여 겪게 되는 공간과 언어의 불일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미학적 비전과 작가적 역량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딕테>(1982) 중 1쪽 사진.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 합숙소 낙서라는 설과 재일본조선문학예술가동맹의 <을사년의 매국노> 촬영 때 새긴 글씨라는 반론이 나와 있다.
이산의 기억과 상실 펼친 차학경
텍스트·비디오·퍼포먼스·영화 등
탈장르적 예술에 열망과 절망 농축
2. 차학경
차학경은 이산의 기억과 언어의 상실을 주제로 텍스트, 퍼포먼스, 비디오, 영화 등 다양한 작업을 펼쳐오다 1982년 나이 서른 살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그의 작가 경력은 1973년경부터 피살될 때까지 10년도 채 못 되는 단기간의 활동으로 이루어지지만, 이산 경험을 농축시킨 심도 있는 작품세계로 일찍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예술이 결실을 이룬 배경에는 지성적 반항의 시대였던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반체제적 문화 토양과, 이에 발맞춰 인종학, 여성학, 비교문학, 영화이론, 다문화주의를 학제화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의 진취적 학술풍토가 자리하고 있었다.
차학경의 작업은 1978년 버클리 대학원 졸업전시회에서 발표한 ‘통로/풍경’을 기점으로 전기작과 후기작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坤 곤(Earth)’(1973), ‘아버지/어머니(Father/Mother)’(1977) 등 초기작은 한글, 한문, 영어, 불어로 쓴 텍스트와 사진을 말라르메식 타이포그래피와 영화적 스틸 프레임으로 구성한 수제 책 작업으로, 이미 자전과 탈자전을 왕래하는 미학적 긴장감과 애매모호함으로 작가 특유의 독자 양식을 개척하고 있었다. 8개 한국 모음을 분절적으로 발음하는 입 모양과 철자를 형상화한 ‘입에서 입으로(Mouth to Mouth)’(1975), 영어와 불어의 문자적 유희인 ‘비디오엠(Videoeme)’(1976) 등, 동시기 비디오 작품 역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기듯 느리게 흐르며 정적 이미지와 동적 영상의 구분을 흐리는 경계 미학의 특징을 보였다. 눈과 입을 띠로 가린 채 없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는 퍼포먼스 ‘눈먼 목소리(Voix Aveugle)’(1975)는 공간과 언어의 도치에 따른 감각 체계의 혼란과 언어 습득의 고충을 요약하고 있으며, 촛불과 거울 반영을 사용한 ‘창백한 울부짖음’(1975)에서는 비언어적 행위, 음성, 이미지로 자신이 염원하는 “관객의 꿈”이 되려고 했다.
후기 대표작 ‘엑사일레(Exil E E)’(1981)와 <딕테(Dictee)>(1982)는 모두 1979년 18년 만에 처음 모국 방문의 경험을 기초로 한 작품들로, ‘통로/풍경’에서 보여주었던 회고적 모티프를 소환하며 귀환에 대한 열망과 회귀가 불가능한 절망적 상황을 주제화하고 있다. 망명자의 언어를 영어, 불어 합성어로 개념화한 ‘엑사일레’는 2개의 8㎜ 필름, 비디오, 작가 음성, 사운드트랙으로 구성된 영상설치 작업이다. 여기서 작가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느리게 움직이고 텍스트와 음성이 병치되는 초기 양식을 유지하면서 서사와 일화를 부각시키는 후기작의 특징을 예증하듯, 언어와 이미지의 변증법으로 자전 경험을 서술하고 있다. 옛 기억을 불러내는 대나무, 툇마루, 찻잔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찍은 구름 사진, 데리다를 연상시키는 철자 X 등 흐릿한 흑백 이미지로 처리된 장면들이 망명자의 “이름 없음”을 토로하는 ‘보이스오버’ 독백으로 향수 어린 주술 효과를 증폭시킨다.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딕테> 44~45쪽 차학경의 어머니 허형순, 버클리 아트뮤지엄 & 퍼시픽 필름아카이브·차학경 기념재단 제공
<딕테>는 불어, 영어, 그리스어, 중국어, 한국어로 쓰인 언어적 혼합체로 시, 산문, 사진, 도표, 드로잉, 지도, 여백을 망라하는 탈장르의 표본이자, 이민자의 균열적 삶을 탈식민주의 메스로 해부한 이산 문학의 전형이다. 한편으로는 시간, 기억, 언어 등 개념을 다루고, 다른 한편으로는 동양과 서양, 현재와 과거, 근대 역사와 개인사를 횡단하는 초문화적, 탈경계적 교직 속에 성 테레사, 잔 다르크, 유관순과 함께 차학경 자신, 자신의 어머니 허형순을 복합 화자로 등장시키며 역사적 여성과 무명의 여성을 동일시한다. 그리스 여신의 이름을 딴 9장의 제목들이 시사하듯이, 차학경은 체험된 이산을 환유적 여성 언어로 번역하는 예술적 과정을 통해 여성 신화를 생산한 남성적 글쓰기, 나아가 부계적 젠더 구조에 도전한다.
차학경의 미완성 유작 ‘몽고에서 온 하얀 먼지(White dust from Mongolia)’(1980)는 망명자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적 억압을 사는 여성의 일대기를 소설과 16㎜ 영화로 구상한 작품이다. 구한말 식민통치를 피해 만주로 건너간 차학경 외조모의 딸인 어머니의 삶을 토대로 만주에 사는 실어증 여성 주인공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두 시제를 오가며 회귀의 욕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망명자의 시련을 은유적으로 대변한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엑사일레’, <딕테>에 이어 소외된 여성의 ‘허스토리’를 완결하려 했던 것일까?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민영순, ‘자기 만들기’(1989), 흑백 사진 포토콜라주. 이정진 촬영·민영순 제공
정치적 이슈 목소리 낸 민영순
민중미술활동 등 ‘문화행동주의’
한국 넘어 아시아로 문제의식 확장
3. 민영순
민영순 역시 이산의 고통, 모국어 상실, 정체성의 혼란을 주제화하지만, 현실 직시적 발언으로 탈식민 이슈를 정치화하는 점에서 버클리 동문인 차학경과 구별된다. 그는 1981년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다양한 경로로 문화행동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아시아아메리칸 미술연맹을 통해 유색인 페미니즘과 복합문화주의에 노출되고, 부마민주항쟁, 광주항쟁 등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경각과 함께 한국계 미국 문화조직 비나리그룹에 가입하면서 민중미술과 관계를 맺는다.
초기작 ‘자기 만들기’(1989)는 이산 여성 작가의 첨예한 정체성 의식을 그대로 드러낸 자화상이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가려가며 이민자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풍자한 4장의 사진 위에 각각 “소수자 모델”, “이국적 이민자”, “동화된 이방인”, “대상화된 타자”라는 글귀를 적어 넣음으로써 소수자의 왜곡된 정체성을 강조했다. 1992년 여섯 시리즈로 발표한 ‘결정적 순간들’ 역시 사진 이미지에 텍스트를 병치시키는 콜라주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작품#1은 자신의 누드 사진을 밑그림으로 가슴과 팔에 “하트랜드”, “점령된”, “테리토리” 등 지정학적 함의를 지닌 쟁의적 문구를 새겨 넣고, 복부에는 배꼽으로부터 나선형을 이루며 퍼져나가는 암호 같은 특정 날짜를 기입하였다. 예컨대 1953이라는 숫자는 6·25전쟁이 끝난 해이자 민영순이 태어난 해이며, 4/19/60은 4·19혁명이 일어난 연도와 자신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연도가 같음을 뜻한다. 작가는 자신의 개인사와 한국사가 우연히 일치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여성의 중심성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과 동일시했다. 자신의 벗은 몸은 부계역사, 식민역사에서 억압된 타자의 몸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동시에 존재의 생장점, 역사의 기원, 즉 배꼽으로 상징되는 원형적 여성의 몸의 은유이기도 하다.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그는 한복, 보따리 등 여성과 관계되는 한국의 전통 모티프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회귀적 감성보다는 식민 상황과 여성 억압에 대한 비판적 지시물로 사용했다. 예컨대 한복과 영어책을 병치, 대비시킨 ‘거주지’(1992)는 고국에 대한 향수와 미국 선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율배반적 자아에 대한 비판, 애증이 엇갈리는 한·미관계에 대한 논평이었다. ‘어머니의 보따리’(1996)에서는 한국 여성성과 여성상의 문화적 기표인 보자기를 모티프로 공허한 여성사를 대변하는 빈 보자기, 정신대를 의미하는 위장무늬 한복, 분단을 상징하는 반쪽의 보자기, 이주의 역사를 나타내는 짐 꾸러미로 구성되는 보따리 연작을 내놓았다.
2000년대 들어 작가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정체성으로 시각을 확장했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전설적 침대 퍼포먼스를 자신과 자신의 파트너였던 아프리카 예술가 앨런 드수자(Allan deSouza)와의 협업으로 ‘리메이크’한 퍼포먼스 설치작품 ‘Will **** for Peace’(2002~2003)에서 민영순은 인종, 이산, 젠더를 둘러싼 문화정치학적 발언을 ‘영국 남자/일본계 미국 여자’ 커플과 ‘아프리카계 미국 남자/한국계 미국 여자’ 커플의 유비관계로 대변했다.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10여개국에서 수집한 150개의 LP레코드판으로 제작한 벽면 설치작품 ‘무브먼트’(2001, 2008)에서는 역내 전통 민속음악이나 대중가요를 집대성하기 위한 장소적, 신체적, 심리적 이동의 과정을 통해 아시아 국가 간의 동질성과 차이, 힘의 역학으로 파악되는 현대 아시아의 정체성을 통찰했다.
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주 노동자 이슈로 확장되었다. 작가는 한국 내 외국 노동자의 문제가 한국인 해외 이민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음을 자각하고 1년간 한국에 머물며 이주 노동자의 집과 노동 현장을 방문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제작, ‘XEN-: 이주 노동 & 정체성’ 전시(2004)로 발표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민영순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한국 근현대사의 치욕의 한 페이지이다. 2014년 서울시립미술관 ‘노바디’전에 출품한 ‘역사를 입다’에서 작가는 위안부라는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매일 입는 옷, 몸의 일부로 기억할 것을 제안했다. 텍스트와 숫자가 기입된 일상의 옷을 입고 사람들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 퍼포먼스로 그는 일본 정부를 향한 정치비판적 발언을 대신했다.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는 망명의 상실감과 이중 정체성의 혼란을 탈식민적 작품세계로 일궈낸 대표적인 1세대 이산 작가들이다. 윤진미, ‘인터섹션’(2001), C-프린트. 윤진미 제공
국가주의 의식에 저항한 윤진미
인종·젠더 분석으로 ‘탈식민’ 행보
가족·결혼 등 운명적 현실 들춰
4. 윤진미
어린 나이에 밴쿠버로 이주한 한국계 캐나다인 윤진미, 그의 작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사진적 개념미술로 일가를 이룬 ‘밴쿠버 화파’에의 참조로 시작되었다. 비판적 모더니즘에 입각한 미학적 순수성과 제3세계 식민역사와 그 문화적 차이와 복합성, 이질성을 정치화하는 밴쿠버 화파의 영향을 반추하듯, 그는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의심하고 뿌리 뽑힌 자아를 실제 식민역사에 관계시키는 구체적이고 심리병리학적인 작업으로 캐나다의 국가주의 의식을 해체하려고 했다.
그의 초기작은 인종, 신체, 젠더, 국가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1991년의 ‘자아 기념품’은 캐나다의 관광 명소 밴프의 여러 사이트를 배경으로 찍은 자신의 사진을 우편엽서로 제작한 작품이다. 캐나다 국가 정체성의 기표 위에 이민자의 몸을 위치시킴으로써 배경과 인물의 불일치, 그 심리적 불협화음을 적시한 것이다. 자신과 가족의 옛날 사진을 재맥락화하는 사진 인용 작업으로 모국과의 연계를 강조하는 것은 이산 작가들의 두드러진 경향 중 하나이다. 병풍 모양의 패널에 가족의 기념사진과 편지를 부착시킨 ‘스크린’(1992)에서 윤진미는 어머니가 여학생이었던 시절의 미국 군함 견학 사진을 통해 그 시기 팽배한 미국에 대한 동경과 그에 따른 식민화와 동일화 과정을 되돌아보며 한국이 처한 지리정치학적 상황에 질문을 던진다.
윤진미의 대표작 ‘그룹 오브 67’(1996)은 67인의 캐나다 교포 한인을 모델로 제작한 대형 연출 사진이다. 캐나다의 국민화파 ‘그룹 오브 세븐’의 로렌 해리스와 민족화가 에밀리 카의 풍경화 앞에서 고정 앵글로 한인들의 앞/뒤 초상을 찍어 격자형의 두 패널로 배열한 이 작품은 언뜻 한인들의 캐나다 이민을 기념하기 위한 단체사진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의는 배경이 된 풍경화와 그 앞에서 포즈를 취한 한인들이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역사적 현실, 그 부조리한 상황을 들춰내는 데 있다. 즉 캐나다 특유의 원시림적 대자연을 원주민이 소거된 상태의 신천지로 재현함으로써 캐나다가 유럽과의 식민관계를 탈피하고 독립국가로서 위상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던 근대기 화가들, 백인 민족주의를 부추긴 그들의 애국적 풍경화 앞에 타자인 한국 이민자들을 불러 세우는 저항의 제스처로 작가는 캐나다 국가주의를 훼손시키는 탈식민주의 행보에 앞장선 것이다.
윤진미는 1996년부터 후기식민주의와 정신분석학적 페미니즘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모성을 다룬 양면 사진 연작 ‘인터섹션’을 제작해 왔다. 자신과 아이들을 모델로 개인적 경험을 서사화하는 이 연작은 부계적으로 결연되는 모자관계를 패러디하는 점에서 주목된다. 작품 #5(2001)는 양육과 육아로 혼이 나간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엄마, 등 돌리고 앉아 우유를 먹고 토하는 장난기 넘치는 두 아이의 사진이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유심히 보면 널브러진 엄마가 걸고 있던 진주목걸이가 아이들 그림에서는 엄마의 몸으로부터 분리된 채 바닥에 내버려져 있다. 떨어져 나온 목걸이가 엄마의 부재를 암시하는 것일까? 치마폭에 싸여 엄마와 한 몸이 된 상상계의 아이들, 즉 한국인 엄마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상징계로 진입하며 캐나다인 아빠의 혈통으로 사회화되는 혼혈 아이들의 재현을 통해 작가는 결혼, 가족을 둘러싼 이산 여성의 운명적 현실을 직시케 한다.
2008년 윤진미는 서울 ‘노바디’전에 2003년 작 ‘초대받지 않는’과 신작 ‘되는대로’ 퍼포먼스 비디오를 출품했다. 전자에서는 캐나다 정글 속 늪지를 쫓기듯 헤쳐 나가는 도망자의 모습으로, 후자에서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엎드려 스케이트보드에 몸을 실은 채 달동네, 청담동 명품매장 할 것 없이 헤집고 다니는 침입자의 모습으로 이산 작가로서의 신체적, 심리적 강박을 영상화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서울의 옛 모습과 현재를 온몸으로 흡입하려고 하지만, 여전히 낯선 캐나다의 자연처럼, 서울의 도시 환경도 그에게 환대의 손을 내밀지 않는다.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못하는 이민자의 무의식적 공포, 사회 속 자리매김이 힘겨운 여성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화면 속의 작가는 나은 삶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고 방랑하는 신유목민의 모습 그대로이다.
5. “외로운 인간의 계보학”
망명자, 이민자, 난민은 외국 문화의 가장자리, 최전선에서 사는 소외된 사람들로, 그 흩어진 인간들의 외로운 모임인 이산을 가리켜 호미 바바는 “외로운 인간의 계보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외로운 인간들이 “상상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국가주의 이념에 맞서 상실과 소외를 환상의 언어로 번안한 신화적이고, 이질적이고, 혼성적인 새로운 역사를 기술한다.
이산을 통해 근대화, 서구화를 체험한 차학경, 민영순, 윤진미의 작업은 서구적인 동시에 반서구적이다. 서구적 방법으로 서구를 상대화시키는 동종요법 발상으로 세계적이면서도 한국적이고,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양가성의 예술을 창조한다.
이와 더불어 개념과 서사, 공과 사, 자전과 탈자전, 정치와 미학의 경계를 흐리는 해체주의 감성으로 후기식민시대 페미니즘 미술의 효력을 발생시키는 점에서 이들의 작업을 평가할 수 있다.
망명자, 이민자, 소수자, 여성…작품에 아로새긴 소외의 굴레](https://img.khan.co.kr/news/2022/02/08/l_2022020901000596500075264.jpg)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