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도 일터에서 날마다 사람이 죽는다.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배관 보온 작업을 하다가, 철판을 쌓다가 노동자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명희 사회에디터
죽음의 자리로 밥벌이하러 갔던 이들은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이들은 죽어서야 세상에 ○○씨로 불려 나왔다. 벽이 무너져 6명이 숨진 광주의 아파트 신축 현장은 공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려다 보니 안전은 뒷전이었다. 부딪히고 끼여서 노동자 1명이 각각 사망한 포스코 포항제철소, 울산 현대중공업 작업장도 마찬가지. 안전 규정을 따르지 않았고, 둘이서 해야 할 일을 혼자 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른다. 이들이 위험에 내몰린 이유는 하나, 비용 절감이었다. 수십년간 그래왔고, 지금도 저 어디에선가는 그렇다.
늘 그렇듯 비극은 도돌이표처럼 돌아왔다. 광주의 아파트에서 황망한 죽음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경기 양주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토사가 쏟아져 3명이 스러졌다. 이런 죽음을 막아보려고 큰 사고가 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인 지난달 29일의 일이다. 광주에서 마지막 매몰자를 수습한 8일에는 경기 성남시 판교2테크노밸리 건물 신축 공사 현장에서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다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두 곳 모두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으로 법 위반 여부는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 생각보다 많아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알려지지 않았던 사망사고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며 “사고가 없던 게 아니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만들지 않은 사업주가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산재사망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의 주장처럼 알려지지 않고 숫자로만 남은 죽음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트위터 계정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laborhell_korea)’에는 지금까지(2월9일) 60명의 기록이 쌓였다. 이 계정은 그날 죽은 노동자를 매일 업로드한다. 고용노동부 산업재해통계를 보면 2020년 한 해 사고로 882명, 질병으로 1180명이 사망했다. 하루에 6명가량이 일하다 죽은 셈이다.
이쯤 되면 중대재해법으로 올해 들어 목숨을 잃은 누군가의 죽음은 언론의 관심을 받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알다시피 중대재해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2018년 사망한 김용균씨와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씨줄과 날줄로 삼아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만든 법이다. 마침 고 김용균씨 산재사망 관련 1심 선고가 10일로 예정돼 있다. 선고를 앞두고 산재 유족들과 시민 1만여명이 법원에 보내는 의견서를 썼다고 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한국서부발전에 책임을 물어 달라는 탄원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한번씩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하루에 6명씩 국회의원이 목숨을 잃는다면” “만약에 하루에 6명씩 대학교수가 목숨을 잃는다면” “만약에 하루에 6명씩 예술가가 목숨을 잃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고요…”
김용균재단이 공개한 의견서 중 은유 작가의 의견서를 읽다 가슴이 뜨끔했다. 그의 말대로 노동자 목숨을 깃털처럼 가볍게 취급하는 현실은 누가 피해를 보느냐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한국 사회 가장 열악한 위치에서 일하는 이들의 죽음에는 눈을 감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보니 그 죽음이 ‘왜인지’ 따지지도 않는다.
이 슬픔이 반복되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법 시행만으로 ‘죽음의 일터’가 대번에 좋아질 리는 없을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국회 통과 과정에서 취지가 크게 훼손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틈을 촘촘히 메우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변화란 거저 오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고개 숙일 수밖에 없어 슬픈 ‘을’들
그리고 “재발 방지”라는 말은 그만 들었으면 좋겠다. 돈 때문이든 비겁함 때문이든, 작정한 외면은 죄가 된다. 이게 중대재해법의 알맹이다. 이 법의 취지는 안전을 돈으로만 따지느라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법적 책임을 물어 산재사망을 막자는 것이다. 책임자가 안전 조처를 충분히 했다면, 혹여 사고가 나더라도 처벌받을 일도 없는데 뭐가 걱정인가.
분명한 것은 누구 말마따나 “날마다 명복”을 빌며 더 이상 얼버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을’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어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