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집권하면 현 정부의 적폐를 수사하겠다고 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이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가)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후 양측은 서로를 향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선 후보가 정면충돌하는 유례없는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갈수록 거칠어지는 대선판이 걱정스럽다.
윤 후보는 이날 청와대의 사과 요구에 대해 “나의 사전에 정치보복은 없다”며 “문 대통령께서도 늘 법과 원칙에 따른 성역 없는 사정을 강조해오셨다. 그 점에서 문 대통령님과 저는 똑같은 생각이라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앞서도 윤 후보는 ‘적폐청산은 시스템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말에 정치보복 의도가 없다고 했지만, 논리가 군색하다. 현 정권에서 좌천을 당한 측근 검사장을 중용하겠다는 말까지 한 것은 객관적으로 정치보복을 예고한 것으로 들린다. 문 대통령과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바라는 정서에 부응함으로써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는 의심이 든다. 그래놓고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런 발언에 대응을 하지 않을 현직 대통령이 어디 있나. 이준석 대표도 문 대통령을 향해 선거에 개입한다고 했는데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윤 후보라는 점을 외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야당 후보를 직접 비난하고 나선 것도 우려스럽다. 전날 청와대 관계자가 불쾌하다고 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은 사태를 키운다는 의심을 받을 여지가 다분하다. 대선판이 어떻게 되든 자신의 명예만 생각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후보와 배우자들을 둘러싼 의혹으로 가뜩이나 비호감 대선이라는 자탄이 나온다. 이런 차에 정치보복이 선거의 쟁점이 되면 후보 간 정책·비전 토론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논쟁이 대선의 정책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선이 최소한 통합의 씨앗을 남겨놓을 수 있도록 정치권 모두 자중해야 한다. 유권자들의 이성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대선판이 혼탁해지면 손해를 보는 건 결국 시민들이다. 11일 대선 후보 TV토론이 열린다. 윤 후보는 이 자리에서 발언의 취지를 소상히 설명하고 시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검찰이 공정하게 수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는 상황에서 적폐청산에 자신이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은 말장난이다. 그리고 대선판을 어지럽힌 부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청와대 역시 더 이상 선거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불러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