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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한국적 클리셰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 민주주의와 한국적 클리셰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 선보이자마자 보수적 언론사 몇몇은 우려의 글을 실었다. 우려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잔혹성에 대한 걱정이고 두 번째는 과도함에 대한 주저함이다. 잔혹성과 과도함은 연관되어 있다. 잔혹성은 허리를 꺾고, 내장을 꺼내 먹는 식의 야수적 표현을 향한다. 보기에 불편한 것이다. 상상이라지만 묘사된 좀비의 폭력이 익숙했던 것보다 과한 게 문제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잔혹함에 대한 우려는 상상이 아닌 현실 묘사에 더 짙게 터져 나왔다.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학교폭력 장면이나 청소년 임신과 출산 장면 같은 것 말이다. ‘수위’가 너무 높다고 표현되지만 이 수위라는 표현이 좀 모호하다. 뉴스나 기사에서 보는 현실의 10대 상황은 묘사된 드라마보다 오히려 더 잔혹하고 잔인하니 말이다. 그럴 때, 점잖은 어른 노릇을 하는 필자들은 현실이 잔혹하다고 그대로 드러낼 필요가 있냐고 되묻는다. 그러니까 일종의 위장막이나 베일을 쳐서 좀 완곡하게 표현하는 게 더 좋지 않겠냐는 권유인 셈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현실을 반영하는 서사 예술을 두고 포장 운운하는 건 사실 낯선 일이 아니다. 굳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인 청소년 학교폭력이나 임신·출산 문제까지 보여줄 필요 있냐는 말이 꽤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 대해, 오히려 창피한 현실을 자랑했다며 외면했던 맥락과 닿아 있다. 도시의 외관을 정비대상으로 삼아 숨기고 덮듯이 영화나 드라마 속 반영된 현실에도 그런 분장이나 화장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셈이다.

이런 비판도 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지나치게 한국적인 서사의 클리셰가 반복되어 지루하고 식상하다는 비판 말이다. 소위 민폐 캐릭터가 사건 진행을 지연시키고, 이기적인 인물이 누군가를 모함하고 훼방 놓기도 하며 비겁한 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악당이 끈질기게 괴롭힌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게 지리멸렬하게 길어지는 아이들의 토론과 이야기였다는 비판도 있다. 죽느냐 사느냐 긴박한 상황인데 어떤 아이들은 정에 끌려 선택을 내리지 못하고, 너무 말이 많고, 토론이 길다 보니 지루하다 못해 답답했다는 것이다.

실제 <지금 우리 학교는>의 생존 학생들은 교실, 방송실, 음악실로 옮기는 동안 이동하느냐 체류하느냐의 문제부터 이동 방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토의하며 최선의 길을 찾는다. 누가 선뜻 나서 이렇게 하자 이끈다기보다 거듭 서로 수평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도출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한국의 이야기가 세계 주류였던 할리우드식 미국 서사와 차별화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전통 민담이나 설화에는 비범한 초능력자나 영웅이 드물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운 좋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서구의 서사에서는 언제나 영웅이 중요하다. 아서왕의 검이나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처럼, 누군가 특출한 한 명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해야 세계는 평화를 얻고 서민은 행복을 되찾는다.

반면 <지금 우리 학교는>에는 뚜렷한 주인공이나 영웅이 없다. <오징어 게임>이나 <지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서사에서 영웅이 가진 최종 심급의 도덕이 능력과 결부되어 있다면 우리 드라마, 영화에서의 최종적 도덕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력의 가능성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도 이럴 땐 이 친구가, 저럴 땐 저 친구가 때로는 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때론 절대적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영웅은 상황 속에 발현된 도덕성에 있지 개인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는 셈이다.

무엇보다 그 지루한 토론 과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요체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아이들은 서로의 의견을 거듭 개진하고 고민하고, 싸우면서 답을 찾아간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때론 소모적으로 보여도 그게 바로 민주적 의사결정이다. 교실 밖에 가득 찬 좀비떼와 교실 안의 학생들이 구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참고, 듣고, 서로를 위로하고 의지하는 자가 곧 인간이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격리되면서 연대해야 하는 기묘한 모순의 체험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아이들이야말로 격리된 연대를 통해 민주적 생존을 이뤄낸다. 집단 승리의 서사, 그게 바로 우리 서사의 강점이자 차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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