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 무책임한 세계 ‘지금 우리 학교는’

위근우 칼럼니스트

원작과 현실의 10여년 간극…그때와 다른 ‘지금’의 위험한 재구성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 10일 만에 비영어 부문 역대 시청시간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공식 홍보 영상 캡처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 공개 10일 만에 비영어 부문 역대 시청시간 순위 5위를 기록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공식 홍보 영상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이하 <지우학>)을 이해하는 중요 키워드는 두 가지다. 바로 제목에도 있는 ‘지금’과 ‘우리’다.

2009~2011년 동안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며 ‘지금’과 ‘우리’를 새롭게 설정할 수밖에 없다. 영상화를 위한 드라마투르기를 제외하더라도 <지우학>의 이야기는 원작이 연재된 시절에는 고려되지 않은 세 가지 맥락 위에서 새롭게 기입된다. 첫 번째는 <킹덤> <부산행> <오징어 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소위 K좀비 및 서바이벌 세계관이 더해진 K콘텐츠 장르의 법칙, 두 번째는 2020년부터 전 지구를 삼킨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경험, 세 번째는 고립된 학생들로부터 떠올릴 수밖에 없는 2014년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다. 2022년 ‘지금’의 시점이 원작 연재 이후 벌어진 중요한 공통의 경험들에 대한 맥락을 품는다면, 그러한 동시대적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작품이 표상하는 ‘우리’라는 범주가 재구성된다. 문제는 위의 세 가지 맥락이 정합적으로 접합되지 못하며 지금 우리의 세계에 대해 굉장히 엉뚱하고도 위험한 메시지를 내놓는다는 것이다.

먼저 K콘텐츠 장르, 특히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강조되는 잔인한 서바이벌 장르 문법 안에서 10대 주인공들이 겪는 고난의 스펙터클은 다분히 고통 포르노로 소급한다. 공개 초기부터 논란이 되었던 학교폭력 재현의 문제를 보자. 1화 첫 장면에서 학교폭력 피해자인 이진수(이민구)는 가해자인 윤귀남(유인수) 무리에게 다시금 심한 구타를 당하다 옥상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역시 1화에서 귀남 일당은 학교 후미진 공간에서 여학생 민은지(오혜수)의 옷을 벗겨 촬영하고 이를 빌미로 협박한다. 은지의 말대로 이들 피해자에게 “여긴 지옥”이다.

K좀비 열풍 다시 불러온 ‘지우학’
2009~2011년 연재 웹툰과 달리
고립된 재앙 속 10대들의 모습
세월호·팬데믹 등 떠오르게 해

약육강식 논리로 설명된 바이러스
학폭·방역 대응 등 자극적 표현들
사회상 제대로 녹여내지 못하며
엉뚱하고 위태로운 메시지 던져

그리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 세상을 누구에게나 좀 더 평등한 지옥으로 만들며 시작된다. 심해의 운석에 기생하던 미생물을 통해 좀비 감염이 일어났던 원작과 달리, 넷플릭스 버전에선 진수의 아버지인 생물교사 이병찬(김병철)이 아들이 폭력에 저항할 힘을 주기 위해 요나스 바이러스를 만들면서 좀비 사태가 발단한다. 그가 세상을 좀비 소굴로 만들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거나 일부러 퍼뜨린 건 아니지만, 효산고등학교와 병원 양쪽을 기점으로 좀비 사태가 발생하자 “강한 자들이 약한 사람들 물어뜯는 거 늘 있던 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병찬은 약육강식의 세계에 아들이 맞서길 바라며 요나스 바이러스를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좀비 사태에 대해선 약육강식의 논리로 설명한다. 물론 병찬이 작품의 메시지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니며, <지우학>이 학교폭력과 약육강식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극중 좀비가 창궐한 학교에 고립돼 생존을 위협당하는 10대들을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극중 좀비가 창궐한 학교에 고립돼 생존을 위협당하는 10대들을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학교와 사회에서 어떤 폭력이 용인되는 구조적 한계를 살피는 대신 그것을 더 큰 폭력과 아비규환의 소용돌이로 덮은 뒤, 학교폭력의 특수성을 지우고 지옥에서의 생존이라는 형식적 유사성으로 피해자들의 생존기를 주인공들의 분투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학교폭력에 대한 자극적 묘사는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아닌 더 큰 지옥이 펼쳐지기 위한 도입부로서의 맥거핀으로 전락하며, 학교폭력은 더 큰 지옥도에 묻힌다.

1화를 분리하면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까. 어림도 없다. 같은 반 남온조(박지후), 이청산(윤찬영), 이수혁(로몬), 최남라(조이현)가 주축이 된 주인공 그룹은 불가항력적인 재앙에 맞서 살기 위해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그것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당하는 과정인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시험당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원작은 이것을 우정과 호혜성에 기반해 함께 생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온조 그룹과 오직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귀남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전자를 강조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온조의 단짝 윤이삭(김주아)이 좀비 감염이 되자 이삭을 포기하지 못해 온조가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뻔한 순간을 일종의 민폐로 그려낸다. 온조의 행동이 합리적인 건 아니지만, 그것이 이삭을 쳐서 창밖으로 떨어뜨린 청산의 ‘이성적’ 행동과 대비될 때 온조의 인간적 딜레마는 감상적이고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린다. <오징어 게임>이 그러했듯 <지우학> 역시 생존 욕구와 인간적 삶이 대립되는 특정한 상황 속에 인물들을 밀어넣은 뒤, 전자로의 선택을 필연적인 것으로 그려낸다. 등장인물들이 생존을 일순위에 두는 건 당연하다. 다만 생존과 실존을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대립시켜 후자를 자연스레 치워버릴 때, 카메라 역시 생존에서 밀려난 좀비떼에 대해 인간적 연민을 담을 부담으로부터 벗어난다. 한때는 학교 친구였던 이들이 좀비라는 절대적 타자이자 재앙이 되어 ‘우리’에 속하지 못하게 될 때, 주인공 그룹이 경험하는 잔혹한 핏빛 순간들은 재난물의 스펙터클이 된다. 불편하긴 하지만 이미 검증된 K좀비 혹은 K콘텐츠의 장르적 공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대들을 고립된 재앙 속에 밀어넣어 고통 포르노를 뽑아내는 것에 대한 알리바이로 세월호를 표상하며, <지우학>의 세계는 더 큰 혼돈에 빠진다.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2022년의 시청자가 특정 장소에 고립되어 생존을 위협당하는 10대들을 보며 세월호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렵지만, 실제로도 <지우학>은 노골적으로 세월호를 표상한다. 은유가 아닌 표상이라 하는 건, 은유로서는 철저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최종 생존자 중 한 명인 박미진(이은샘)이 마지막화 말미에 세월호 특별전형을 연상시키는 ‘좀비특별전형’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장면은 얄팍한 농담이라 치자. 바깥의 어른들에게 잘 있다는 동영상 인사를 남기는 모습 등 세월호가 겹쳐지는 여러 순간들을 보며 슬픔을 느끼지 않기란 어렵다. 즉 좀비 장르물로서의 자극 위에 감정의 레이어가 덧씌워지며 작품의 결이 풍성해지는 듯한 효과가 생긴다. 이 슬픔은 재난의 공간 바깥에 있었던 일종의 부채감으로부터 비롯된다. <지우학>이 원작 대비 학교 바깥 어른들의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다루는 건 이러한 맥락과 연결되어 보인다. 고립된 학생들을 구해야 하는 당위와 그럴 수 없는 여러 현실적 여건이 교차되며, 공적 권력의 책무와 좋은 어른의 의무 사이의 간극과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우학>은 이 딜레마를 힘 있게 밀고 나가 작품의 도덕적 입장과 관점을 확실히 하기보다는, 부성애와 모성애라는 역시 K콘텐츠 특유의 신파적 코드로 난제를 회피한다. 청산의 어머니(이지현)는 청산을 구하기 위해 학교로 갔다가 곧 좀비에 물려 감염되고, 온조의 아버지이자 소방팀장인 남소주(전배수)는 딸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군인들의 감시와 총알 세례를 뚫고 효산고로 향해 체육관에 갇힌 온조 일행을 구해낸다. 물론 아들과 딸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부모를 보며 울컥하지 않기란 어렵다. 하지만 혈육의 가족애와 숭고한 희생이 어른이자 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대신할 때, 세월호가 한국 사회에 남긴 수많은 공적 숙제들은 진지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신파를 위한 장르적 설정으로 전락한다. 단적으로 <지우학>은 과연 우리가 그때 어떻게 했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답하지 않는다.

구하러 오지 않은 어른들을 힐난하며 부채감을 자극하되, 사회 공동체의 책임에 대한 전망은 공백으로 두는 <지우학>의 무책임한 재현은, 동시대 팬데믹의 맥락과 연결되며 좀 더 실천적인 해악으로 이어진다. 효산고에 고립된 주인공들의 경험이 세월호를 표상한다면, 효산시 전체로 퍼진 좀비 사태는 명백히 팬데믹을 표상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를 연상시키는 몇 가지 에피소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요나스 바이러스 확산을 형상화한 지도 이미지가 그러하다. <킹덤>이 걷잡을 수 없는 역병의 은유로서 좀비를 묘사했다면, <지우학>은 근본적으로 좀비 사태를 국가적 방역 문제로 인식한다. 재난 컨트롤타워인 계엄사령부가 세월호로서의 효산고에 개입하지 못하는 건, 자칫 국가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팬데믹 상황 때문이다.

고약한 딜레마지만 이원화해서 해결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계엄사령부는 확산 방지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설정해 효산고의 생존자를 방치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는 것이 마치 팬데믹 확산 방지와 양립할 수 없는 숙제인 것처럼 가짜 대립이 만들어지며,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낮은 수준의 공리주의로 효산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희석된다. 이에 대한 <지우학>의 모호하고도 이중적 태도는 매우 비겁한데, 생존자를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우리 왜 버렸어요?”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하면서, 또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효산시를 폭격하는 결정을 단독으로 내린 사령관 진선무(김종태)의 선택에 대해서는 영웅적 아우라를 부여한다. 특히 책임을 지겠다더니 책임은커녕 자살하는 그에게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따뜻한 면모를 강조하며 선무의 결정을 일종의 자기희생처럼 애틋하게 묘사할 때, <지우학>의 신파는 더할 수 없이 역해진다.

위근우 칼럼니스트

위근우 칼럼니스트

학교폭력이든, 세월호든, 팬데믹이든, 공동체의 해법을 찾아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나열하고 폼을 잡고선, 그 모든 걸 신파적 카타르시스로 해소한 자리엔 그 어떤 비판적 전망도, 낙관적 상상력도 남지 못한다. 단순한 부재가 아니다. 고통을 겪어낸 주인공들에겐 사회를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냉소만이 남고, 서로가 서로에게 방역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팬데믹 시대의 호혜성 원칙은 다시금 각자도생과 배제의 세계관으로 대체된다. 결국 <지우학>의 ‘지금’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고, ‘우리’는 혈연과 애정 관계로 묶인 사적 집단으로서만 호명된다. 오해해선 안 된다. 이것은 디스토피아에 대한 재현이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향한 무기력의 학습이다. 지금, 우리에 대한 상상력을 갉아먹는.


Today`s HOT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2024 파리 올림픽 D-100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