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사양 이외에 선택옵션이 거의 없는 자동차를 ‘깡통차’라고 부른다.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자동차를 일컫기도 한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JD파워는 해마다 자동차 품질을 조사해 발표한다. 대표적인 것이 초기품질조사(IQS·Initial Quality Study)와 내구품질조사(VDS·Vehicle Dependability Study)이다. 현대차가 엑셀 승용차를 미국에 처음 수출한 게 1986년이지만 그동안 벽은 높았다. 수출 초기 한국차는 JD파워 조사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이 돼서야 IQS 순위가 10위권에 들기 시작했다. IQS는 출고 6개월 이내 신차, VDS는 3년 된 자동차가 대상이어서 신뢰도는 VDS가 더 높다. VDS는 기아차가 2012년 32개 브랜드 중 25위, 현대차는 2014년 31개 브랜드 중 27위 등 바닥권이었다. 미국에서 깡통차 취급을 받았던 셈이다.
JD파워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발표한 2022년 VDS에서 기아가 일반 및 고급 브랜드 32개를 통틀어 1위에 올랐다. 현대는 3위, 제네시스는 고급 브랜드 1위이자 전체 4위에 자리했다. 이들 3개 브랜드를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15개 자동차그룹 중 도요타와 GM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미국 폭스 뉴스는 ‘기아가 새로운 왕(Kia is the new king)’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바퀴 달린 세탁기와 냉장고’라고 조롱당하던 한국 자동차의 눈부신 발전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미국에서 148만9118대를 팔아 혼다를 제치고 판매량 5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의 다각적인 품질 개선 노력이 미국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건 맞다. 다만 각각 100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VDS는 해당 자동차 소유자의 주관적 평가일 뿐이다. 예컨대 벤츠를 운행하면서 불만이 있는 운전자가 많으면 평가는 낮아진다. 이번 VDS 결과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 가치 수위권인 벤츠는 전체 17위였고, 볼보는 하위권인 30위였다. 현대차그룹의 현지 마케팅 전략도 평가에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보증기간이 길고 리콜도 보다 적극적이다. 국내 소비자를 홀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산품 구매를 당연시하는 국내 소비자의 현대·기아차 짝사랑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