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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단일화의 추억은 잊어라

입력 2022.02.15 21:25

수정 2022.02.15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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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수 칼럼]아름다운 단일화의 추억은 잊어라

설연휴에 손에 쥔 책이 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9년 만에 쓴 사회비평서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이다. 책을 권한 지인은 “생각이 많아질 거”라고 했다. 그랬다. 서문 첫 줄에서 눈이 멈췄다. “촛불혁명이 시작된 후로 주인노릇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2017년의 촛불이 ‘진행 중인 혁명’일 수 있음을 고민해보자 했다. 큰 기대를 모은 첫 촛불정부는 실망스러운 점도 많았다고 일갈했다. 그러곤 촛불이 일회성 항쟁일지 혁명일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시민의 주인노릇에 달려 있다고 봤다. 노학자의 통찰(洞察)은 깊고 냉정하다. 무릇 직업병일 게다. 그 서문 첫 줄의 ‘주인노릇’이 오래도록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역사는 돈다. 적폐청산·연합정부·단일화란 말이 대선판에 재등장했다. 5년 전 시민들은 ‘이명박근혜 9년’의 권력 사익화와 국정농단을 탄핵했다. 솟구쳐오르는 민심에 답한 ‘윤석열의 적폐수사’와 집권 시 사정정국을 열겠다는 ‘윤석열의 적폐수사’는 역사적 맥락과 출발점이 다르다. 연합정부는 여야 의원 234명이 박근혜를 탄핵했을 때도 나온 말이다. 대선판엔 단일화의 장도 다시 섰다. 1987년 직선제 도입 후로만 5번째다.

공은 안철수가 쏘아올렸다. 선거 24일 앞이니 역대로 가장 늦었다. 안철수는 윤석열에게 여론조사로 단일화하고, 같이 러닝메이트로 뛰고, 집권 시 공동정부를 만들자고 했다. 그의 지지율은 내림세다. 안철수로선 밑질 것 없는 꽃놀이패를 빼든 셈이다. 윤석열은 단일화만 끄덕이고 여론조사엔 즉답하지 않는다. 이재명 캠프는 통합정부의 문을 안철수·김동연까지 열어놓고 있다. ‘통 큰 양보’를 원하는 윤석열과 ‘통 큰 승부’를 바라는 안철수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대선은 다시 요동치는 ‘3국지’가 됐다.

단일화는 4가지 끝이 있었다. ①1987년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②1997년 첫 연합정부로 이어진 DJP연합 ③2002년 여론조사로 희비 갈린 노무현과 정몽준 ④2012년 양보로 끝난 문재인과 안철수의 길이다. 윤석열·안철수의 단일화는 그 어디쯤일까. 끝은 알 길 없고, 사람 속부터 읽어본다.

#동상이몽 = 안철수는 여론조사 경선을 ‘유일한 제안’이라고 배수진 쳤다. 그는 지지율 3위 노무현이 정몽준과 단일화해 대선 승기를 잡은 2002년을 보고 있다. 윤석열이 말한 ‘커피 한잔’ 담판은 안철수의 양보를 전제한다. 국민의힘은 여론조사 경선도 역선택을 문제 삼는다. ‘혹시’ 하는 것일 게다.

#시간과의 싸움 = 안철수 캠프는 2~3일 내 답을 달라고 한다. 속전속결하겠다는 뜻이다. 단일화는 윤석열 제안을 기다리는 게 유리하나 지금은 오도가도 못하는 그 늪부터 벗어날 때로 봤음직하다. 윤석열은 ‘만만디’다. 시간을 자기편으로 본다. 단일화 여론 추이를 보며 담판·경선 카드를 다 저울질하고픈 맘이 읽힌다. 안철수는 그 고사작전을 모를까. 단일화 밀당은 빨리 끝날 수도 있다.

#1+1의 시너지 = 대선 속의 단일화는 지난했고, 달고 쓴 기억이 교차한다. 2012년 룰 싸움이 길어지다 안철수가 사퇴하고 대선 당일 방미길에 오른 단일화는 박근혜에게 졌다. DJP의 공동정부와 공약도 1년의 산고 끝에 나왔다. 선거판을 흔드는 단일화가 승리 보증수표는 아니다. 단일화 있던 대선은 다 박빙이었다. 윤석열과 안철수도 급조하는 ‘반문 단일화’ 이상의 명분·가치·감동이 없으면, 그 패자의 지지율은 갈라진다.

다들 할 얘기가 맺힌 대선이다. 밥자리에선 ‘이대망’이라는 사람을 봤다. “이번 대선은 망했다”면서…. 동석자들도 끄덕인다. 20대·자영업자 공약만 넘친다 했고, 큰 싸움이 없다 했고, 네거티브에 지쳤다는 불만도 컸다. 그러고도 투표는 다 한다 했다. 그래서일 테다. 차선·차악을 견주고 맘을 숨기는 ‘샤이 이재명’과 ‘샤이 윤석열’이 많다. 여론조사에선 호남·TK에도, 이게 좋으면 저게 싫은 2030과 5060 속에도 보인다. 그 샤이보터의 선택에 따라 3월9일 밤 웃고 울 것이다.

정치원로들이 판세를 읽는 네 원칙과 잣대가 있다. 뭉치면 이기고 오만하면 진다. 지나보면 포지티브가 웃고, 집토끼가 뛰는 쪽이 이긴다. 여기에 더해, 화살(공약)만 쏘지 말고 청룡언월도(길싸움)도 내리치는 대선이면 좋겠다. 검찰공화국·기후·평화를 논쟁하고, 청년·여성이 청와대·내각에서 더 많이 일하는 날도 보고 싶다. 이 땅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 후보는 스스로를 증명하고, 시민은 주인노릇을 다하고, 오미크론은 힘 떨어지는 ‘마지막 22일’이길 빌고 빌고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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