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동네는 고양이가 정착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높낮이가 다양한 담, 뒹굴고 타넘기에 제격인 까끌까끌한 아스팔트 기와지붕들, 건물마다 구조가 달라 사이사이에 생겨난 수많은 미로까지. 나는 담벼락이 보이는 내 방 창문에서 담 위를 걷는 수많은 고양이들을 봤다. ‘만났다’고 표현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수많은 고양이 중 단 한 마리의 얼굴도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그들에게 무심했기 때문이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골목 가장 끝 집에 사는 통장 아저씨가 비닐봉지를 들고 집집마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 시간 뒤 우리집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아저씨는 할머니에게 봉지 속 물건을 건넸다. 쥐약이었다. 아저씨는 참치에 살살 섞어서 담이나 마당에 두라 일렀다. 몇 달간 고양이를 혼자 ‘박멸한’ 업적을 웃으며 늘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독립 후 다섯번째로 구한 집은 처음으로 원룸이 아닌 방 한 칸이 딸려 있는 지층 주택이었다. 주택가가 다 그렇듯 그곳에서 밤이 되면 고양이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집은 비가 올 때마다 천장에 곰팡이가 낄까봐 청소를 해야 했는데,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문 밖에서 새끼 고양이의 다 갈라진 울음소리가 들렸다. ‘동물은 무조건 밖에서’란 규칙이 있는 동네에서 자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서 그 고양이가 다른 곳으로 가주기를 바랐다. 내 집 현관 앞에서 떠나지 않는 야윈 고양이를 만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나는 고양이에게 통조림 하나를 건넸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정답게 묘사하며 빼놓은 것 몇 가지가 있다. 집마다 있던 담의 끝엔 언제나 쇠못으로 만든 날카로운 말뚝이 있었다. 어떤 집의 지붕에는 칼날과 유리조각이 잘게 깔려 있었고, 어떤 집 대문 위에는 녹슨 철사를 뭉쳐 만든 철조망이 있기도 했다. 마당의 짧은 줄에 묶여 대문 틈 사이로 왕왕 짖다 시끄럽다며 맞던 개들은 이따금 오토바이를 탄 개장수에게 팔려 가기도 했다. 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 미로의 구석구석 통장님이 준 쥐약 섞인 밥이 놓였다.
새로운 감각을 얻고 나면 고통이 시작된다. 내가 만족하며 살아왔던 세상, 과거의 내 자신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 때문이다. 그 고통은 철저한 타자화를 통해 은폐된 것들을 마주할 때 더욱 극심해진다. 그래서 우연히 고양이를 만나고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나는 후회했다. 나에게 의지하는 작은 동물에게 ‘너는 어디서 왔니?’라고 묻기 시작하자 ‘다들 알아서 살아가겠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든 소외된 존재들의 출처와 삶이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동물만큼 사람을 좀 불쌍하게 여겨라!’ ‘소나 돼지는 안 불쌍하냐?’ ‘고양이가 새를 해친다는 사실을 모르시나요? 새를 보호합시다.’ 고양이를 향한 무차별 테러를 규탄하면 갑자기 억지스러운 당위를 끌고 오고, 선한 의도의 결점을 찾아 자신들의 학대행위가 정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익숙하지 않은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차별하며 희열을 느끼는 이들이 자신의 모순을 마주하지 않고 거짓된 정의로움을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패턴이다. 주변의 작은 동물의 생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결국 약자의 삶과 비거니즘, 환경 문제에 앞장서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그들이 끝내 외면하는 진실일 것이다.
‘고양이와 고양이 보호자들로 인한 극심한 피해’를 호소하며 테러를 저지르는 이들은 이제 염치도 없이 약자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들고 나오는 무력 행위를 빼앗아 자신들의 잔인한 폭력과 겹치기까지 한다. 청원의 수만큼 고양이를 살해하겠다는 명분 없는 예고에 소외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던 이들이 모두 함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우리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죽음을 느낀다.
<복길 자유기고가·<아무튼 예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