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분기의 출산율은 0.82명으로 또다시 역대 최저를 갱신했다. 많은 이들이 저출생 현상을 한국인의 멸종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현상을 한국에 사는 취약한 이들의 멸종으로 본다.
홍혜은 저술가·기획자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발표된 후 몇몇 언론이 나서 관련 예산이 점점 커지고 낭비되는 것이 문제라는 여론을 형성했고, 이를 방어하는 측은 기존 대책마저 없었으면 인구는 더욱 감소했을 것이고, 기혼 부부 내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늘어났기에 효과가 있었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바로 이 부분이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1960년대 초반생을 기준으로 100명 중 3~4명을 제외한 모두가 결혼했다면, 1980년대생의 경우 1960년대생의 10배가 되는 여성들이 마흔다섯 살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에게 결혼 의사가 없다. 지금의 결혼 가족은 애초에 남성을 직장에, 여성을 가정에 묶어둠으로써 잘 기능하도록 설계된 사회체제이므로 현실에 맞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가족은 사회복지의 구멍을 때우는 ‘가성비’ 수단으로 작동해 왔으니, 가족은 안식처가 아닌 위기 처리반이었고, 위기에 무너진 가족은 트라우마 양성소가 됐다. 물려받을 것이 있는 이들에게 결혼 가족은 가장 편안한 틀이다. ‘판교 신혼부부’다.
한국의 비혼 출산율은 2022년 기준 2.3%다.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결혼한 부부에게서만 아이가 생기고 있을 리가 없는데, 다른 데서 태어날 아이들은 모두 어디 갔을까? 그러니 저출산 대책에서 여전히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직접적 출산 장려 정책은 특정 계층에게만 쏟는 지원이 되고 마는 것이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여기 있다. 낡은 생애주기 틀 위에서 주거와 일자리, 출산과 육아 정책이 굳어져 있다. 예산이 늘어나도 방식이 그대로다. 가령 주거는 결혼을 해야만 사적인 돌봄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검토해 보면 이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보여 더욱 두렵다. 남성만이 생계부양자일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서 부모 잘 만난 이들을 빼면 여성과 가난한 남성들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하는 난국이다. 그런데 신혼부부 위주의 지원책을 여전히 노골적으로 밀고,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을 빼고 가족부만 남긴다는 후보가 유력 후보다. 더 많은 여성과 가난한 이들은 결혼 가족 밖의 자리를 찾아야만 하고, 이는 여성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이 함께 가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것을 말하지 않는다.
미래 세대의 문제인 기후위기를 다룰 때는 아이들 대신 기업이 등장한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등 세 후보 모두 기후 정책에 ‘성장’ 담론을 덧댄다. 재앙은 취약한 곳부터 덮치는데, 그 사실을 뭉뚱그리고 있다. 계급, 지역, 젠더를 지표로 기후위기를 분석하겠다는 심상정 캠프의 공약은 어떤 후보가 당선되어도 참조해야 할 텐데, 주목받지 못한다. 그러니 저출생 현상은 취약한 이들의 멸종이다. 대단지 브랜드아파트 숲속에서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 만들어질 사회를 상상해 본다. 디스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