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공개된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2> 7화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의 한 장면. 쿠팡플레이 영상화면 캡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 시즌2>가 수어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제작진이 사과하고 영상도 삭제하겠다고 했지만 수어통역사들은 ‘면피성 사과’라며 반발했다.
<SNL코리아>는 지난 12일 공개한 시즌2 7화 ‘위켄드 업데이트’ 코너에서 배우 정상훈을 ‘AI 수어 통역사’로 등장시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진 편파 판정을 풍자했다. 정상훈은 극중 기자 역할을 맡은 모델 겸 방송인 정혁이 뉴스를 전할 때 수화 통역 연기를 하면서 과장된 동작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편파 판정으로 국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면서 양손 검지를 들어 머리에 뿔 모양을 만들고 눈과 입을 크게 벌리는 식이었다.
이 장면은 쿠팡플레이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라왔고 이내 수어 비하 논란이 불거졌다.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엉터리 수어로 표현하는 게 재밌냐’ ‘수어통역사를 무시하고 수어를 낮잡아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항의 댓글이 이어졌다.
<SNL코리아> 제작진은 21일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과문을 올렸다. 제작진은 “베이징 동계올림픽 편파 판정 이슈를 풍자하는 과정에서 제작 의도와 다르게 많은 분들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며 “해당 영상은 삭제 조치했으며 본편에서도 삭제 반영될 예정이다. 앞으로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 있어 소재와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 즐거운 웃음을 드릴 수 있게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수어통역사들은 <SNL코리아> 측이 정확하게 잘못을 인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재발방지 대책이 빠졌다고 비판한다. 수어통역사 A씨는 22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사과문을 봤지만 농인이나 수어통역사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어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면서 “전문통역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일하지만 자원봉사자 정도로 여기는 인식에 힘이 빠진다. 엉터리 수어를 웃음 소재로 쓴다는 것 자체가 낮은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어통역사 B씨도 “도쿄 올림픽 개막식 때 지상파 3사가 수어통역사들에게 4시간 ‘독박 통역’을 시켜 논란이 된 게 불과 6개월 전”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을 예민하게 볼 게 아니라 웃음거리가 된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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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프로그램의 풍자 대상이 유독 사회적 약자에 집중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언론인권센터는 이날 성명을 내고 “<SNL코리아 시즌2>는 지난해 12월 방영을 시작한 이후 권력이 약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들을 대상으로 비판과 조롱을 이어왔다”며 “제작 의도는 ‘고품격 풍자와 초특급 웃음을 전한다’는 것인데 고품격 풍자도, 초특급 웃음도 전하지 못한 채 모두에게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만 남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해당 프로그램의 ‘유튜버 후리지아’ 캐릭터 등을 언급하며 “위조품을 사용한 일반인 출연자를 향한 사이버 불링 흐름에 편승해 그를 조롱하는 장면을 내보내기도 했다”며 “‘만만한 상대만 때린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김철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활동가는 이번 논란에 대해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상호 간 존중할 수 있는 평등한 환경이 바탕이 돼야 한다”며 “장애인과 수어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이들이 현재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식 하에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풍자는 약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표현의 자유에 앞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먼저 돌아봐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