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23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3일 “저와 국민의힘이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김대중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이 말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 유세에서 꺼냈고,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는 처음 찾았다는 하의도 생가에서도 재론했다. DJ와 이재명 후보 지지자의 틈을 벌리면서 호남으로 서진(西進)하고 싶다는 뜻이다. 논란은 작심한 것일까. ‘DJ정신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넘어 ‘내가 더 가깝다’는 자평은 여야의 말싸움으로 옮겨졌다.
DJ는 인동초(忍冬草)로 불렸다. 겨울을 견디고 하얀 꽃을 피우는 넝쿨풀과 옥살이·망명 속에 수차례 사선을 넘은 그의 삶은 닮았다. 숱한 고난을 딛고 서면서도 그는 평생 정치보복을 입에 담지 않았다. 1997년 대선 승리 직후 그는 과거 목숨까지 겨눈 전두환·노태우의 특별사면을 요청했다. DJ정신은 ‘진실고백·용서·화해’를 품고 있다. 남아공의 만델라도 갔던 길이다.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로 정치보복 시비부터 일으킨 윤 후보와 출발선이 달랐다.
결이 다른 것은 또 있다. DJ는 남북정상회담의 문을 열고 평화통일의 이론적 기초를 쌓았다. 윤 후보는 대통령의 말일 수 없는 ‘선제타격’을 거론하고, “(좌파 민주당 정권의) 생각이 평양과 똑같다”고 했다. DJ는 생전에 대문 앞에 자신과 부인의 명패를 나란히 내걸었다. 그 여권 신장의 꿈은 2001년 이회창의 보수야당도 요구한 여성부 신설로 맺어졌다. 지금 ‘여성가족부 폐지’로 남녀를 갈라치는 윤 후보의 생각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20세기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인물은 누굴까. 한 역사학자는 한국전쟁과 북한 체제를 낳은 김일성, 대한민국 산업화의 토대를 다진 박정희, 민주화·남북화해·인터넷고속도로 시대를 연 김대중을 꼽았다. 많은 사람이 끄덕일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이길 원한 DJ는 불굴의 정치인이면서 사상가였다. 그늘과 품이 넓어 무더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목이었다. 그런 DJ정신을 윤 후보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국민통합으로 해석한다. 세 화두로만 보면, 헌법에도 있고 대선판에서도 굳이 새로울 것은 없다. 보고 싶은 대로만 DJ정신을 보고 아전인수하는 게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