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님,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월9일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뽑힐 테니까요. 그동안 얼마나 애썼는지요? 머리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남모르게 흘린 눈물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그동안 못다 한 일을 하나하나 이루시기 바랍니다.
서정홍 농부 시인
퇴임 후,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바빠서 하지 못한 텃밭농사부터 해 보시렵니까? 조그만 텃밭에 유기농 거름을 넣고 괭이로 땅을 일구어 상추와 부추 씨앗을 뿌려 보시기 바랍니다. 당근, 쑥갓, 케일, 치커리, 양배추, 청경채, 쌈배추를 좋아하시면 같이 뿌려도 좋습니다. 씨앗이 워낙 작아 장갑을 끼지 마시고 맨손으로 뿌려야 합니다. 모래알보다 작은 씨앗을 손바닥에 가만히 올려놓고, 씨앗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렵니까?
크든 작든 세상의 모든 씨앗은 그 안에 상상할 수 없이 신비롭고 놀라운 생명을 품고 있습니다. 씨앗은 잎과 줄기를 품고, 고운 꽃과 열매를 품고, 또 다른 씨앗도 품고 있습니다. 이 작은 씨앗이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여린 싹을 틔우고, 땡볕 아래에서 때론 비바람 견디며 자랄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합니다. 그러나 씨앗이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면서 농부에게 숱한 이야기를 속살속살 들려주리라 생각하면,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낸 씨앗의 이야기를 오히려 기다리게 됩니다. 농부는 씨앗이 들려주는 신비스럽고 놀라운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갑니다.
저는 농부가 되고서야 모든 사람은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 해도, 많은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요. 농부는 이랑을 갈거나 씨앗을 뿌리거나 풀을 맬 때 머리를 숙입니다.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어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소중한 몸짓입니다. 연둣빛 새싹 앞에서도, 지렁이 한 마리 앞에서도, 똥거름 앞에서도, 머리를 숙입니다.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곡식 한 톨 거둘 수 없으니까요. 생명 앞에 머리를 숙이는 일이 바로 농사입니다.
모든 생명은 하늘과 땅과 공기와 물과 햇볕과 비와 바람과 구름에 기대어 삽니다. 언덕도 언덕끼리 나무도 나무끼리 서로 비바람 막아주며 서로 기대며 살아갑니다. 서로 기대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생명은 없습니다. 이 모두 농부가 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절이나 교회를 찾아가 무릎 꿇고 기도하지만, 농부는 사람을 살리는 작물 앞에 날마다 무릎 꿇고 기도합니다. 모종을 심거나 풀을 맬 때나 배추벌레 한 마리 잡을 때도 몸을 낮추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기에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일하다 보면 욕심도 잡념도 새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도시 사람들이 명절이나 휴가철에 고향(농촌)에 왔다 가면 몇 달 동안 범죄가 훨씬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만큼 농촌은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 주고 맑은 곳으로 이끌어 줍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이제 농부의 눈으로 못다 하신 꿈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시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언제든 틈이 나면 저희 마을에 들러주시기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