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부패호랑이

이용욱 논설위원
김상민 기자

김상민 기자

호랑이는 용맹한 동물의 상징이지만, 잡귀와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僻邪)의 존재로도 여겨졌다. 집 안 곳곳에 까치호랑이 그림을 붙여놓은 이유이다. 김탁환 작가의 <밀림무정>에 등장하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흰머리’는 사냥꾼들 사이에서도 건드려서는 안 될 영물로 묘사된다. 올해 호랑이의 해를 맞아 코로나19 퇴치를 기대하는 심리 기저에는 호랑이를 영물로 여기는 사고가 깔려 있을 터이다. 호랑이는 또 교활하다는 인상도 갖고 있다.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바위나 낙엽을 밟는가 하면 냇가를 따라 이동하면서 발자국을 없애고, 늘 사냥꾼 등 뒤에서 달려들어서 생긴 이미지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호랑이가 부정적인 의미로 더 자주 쓰이는 듯하다. 용맹과 행운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와 다르게 현실의 호랑이는 부패한 고위관리를 일컫는다. 마오쩌둥 주석은 1952년 삼반운동(반부패·반낭비·반관료주의)을 펼치면서 부패세력을 호랑이에 비유했다. 마오 주석은 “성, 도시, 큰 군구마다 대호가 수백마리씩 있는데 못 잡으면 패전”이라며 이들과의 싸움을 독려했다. 죄질에 따라서 대호, 중호, 소호로 분류해놓고.

이런 흐름은 시진핑 주석이 이어받고 있다. 2012년 시진핑 체제 이후 중국의 부패호랑이 때려잡기는 본격화됐다. 그는 “호랑이(고위관리), 파리(하급관리), 여우(해외도피 사범)를 다 잡겠다”며 대대적으로 사정작업을 펼쳤다. 최고 지도부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과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등을 먼저 숙청했다.

중국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가 2일 랴오닝성 부성장이자 공안청장인 왕다웨이를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왕다웨이는 2013년부터 랴오닝성 공안청장을 지낸 동북 지역의 거물급 인사이다. 시 주석 1인 체제 강화라는 해석이 설득력이 있다. 왕다웨이는 올 들어 사냥당한 11번째 호랑이다. 시 주석은 올가을 당 대회에서 사상 초유의 3연임을 시도한다. 중국의 인권탄압과 철권통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시 주석 일가가 거액의 재산을 쌓고 있다는 보도들이 끊이지 않는다. 시 주석 본인이 가장 큰 호랑이가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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