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해제와 새 학기 시작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이번 주부터 각급 학교의 새 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봄 학기이다. 이전 학기와는 달리 대부분 학교가 대면 수업을 예정하고 있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설레면서 긴장되기도 한다.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이제 코로나 대유행이 최정점을 지나 일상적인 토착화 단계로 갈 것이라는 예상도 접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새봄을 맞이하는 성급한 기대를 숨길 수가 없다. 살펴보면, 누군가에게는 이 봄이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고, 또는 길었던 인내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때이기도 하다. 새 학기를 맞이하는 학생들과 달리, 스님들은 한철 안거를 마쳤다. 서로 다른 공간, 엇갈린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하지만, 그 시작과 마무리를 맞이하는 마음은 묘하게도 닮아 있다.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름 전, 스님들은 지난겨울 한철 동안의 안거 수행을 마치고 해제(解制)를 했다. 쉽게 말하자면, 스님들도 방학을 한 것이다. 안거(安居)는 스님들이 여름과 겨울에 수행처에 모여서 석 달 동안 절 밖으로 출입을 삼가고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기간이다. 통상 한철 석 달을 기간으로 삼아 수행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특별하게 2년이나 3년 단위로 결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매년 안거가 시작될 무렵이면 스님들도 마치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처럼 긴장하고 열심히 정진하겠다는 결기마저 눈에 서린다. 결제일이 되면 마치 흩어졌던 구름이 모여들듯, 전국에서 스님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바로 느슨해졌던 수행의 고삐를 조이듯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안거는 오랜 전통이지만, 작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높은 치명률로 우리의 일상을 위협할 무렵에는 이례적으로 결제를 한 달 연기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안거는 끊기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 기간 동안 안거 대중들은 밖으로만 치닫는 마음을 안으로 돌리고 산문 밖을 나가지 않고 수행에 집중한다. 안거하는 동안 더러는 수행에 큰 진전을 이루는 스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스님도 있다. 제각각이다. 그렇게 눈이 내리고 쌓였다가 녹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얼었던 계곡물이 녹아 포행 길에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봄이다. 그러고는 해제일을 맞이한다. 말 그대로 꽁꽁 동여맸던 마음의 끈과 공동체를 결속했던 무형의 끈을 풀어놓는 날이다. 이제 다시 각자가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안거가 끝나 해제를 하면 스님들은 만행(萬行)을 떠난다. 만행이란 출가수행자들이 한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미진하고 아쉬웠던 수행의 느낌들을 뒤로하고 홀가분하게 일주문을 나선다. 결제 기간 동안 내면으로 침잠했던 마음의 길을 세상으로 향해 낸다. 옛 스님들은 만행을 하다가 농번기에는 농촌에서 일손을 도와 모내기를 한다든가 밭을 간다든가 하면서, 탁발을 대신하곤 했다. 그렇게 스님들은 세상을 배워가면서 또 세상을 스승 삼는다. 이렇게 만행은 세상 사람들의 기쁨과 고통을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 된다.

마치 스님들의 안거처럼 코로나가 대유행한 지난 2년 동안이 우리에게는 인욕의 결제 기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이제 해제일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격리와 거리 두기, 방역패스가 풀리고 집 밖을 나서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면 이전과 같지 않은 풍경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보았던 카페나 식당이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심하게는 동네 길목에서 매일 인사하면서 지나쳤던 마을 어르신이 세상을 떠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각자 이전과는 다른 풍경 속에서 일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현장에서 의료 종사자들은 방역복 속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아직은 마스크 자국이 얼굴에 선명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작과 마무리가 엇갈리는 지점에 서 있다. 길고 길었던 지난 2년간의 안거를 뒤로하고 각자의 만행 길이 시작된다. 자기 자신 혹은 가족에게만 집중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모두들 고통의 시간을 같이 견디면서,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준 동료이자 스승이다. 새로운 것이 시작되고 묵은 것들이 끝나가는 이 봄에 서로에게 마음을 다해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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