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된 지난 4일 시민들이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앞에 길게 줄지어 서서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2000년 이후 치러진 4차례의 대통령선거에서 3위 밖을 한 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후보(?)가 있다. 이 후보는 2007년 17대 대선에서 1위를 했다. 선거운동도 하지 않았고, 정책을 내놓지도 않았으며,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다. 1등을 했어도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 이 후보가 받은 표가 ‘대통령을 뽑는 표’가 아닌, ‘대통령을 안 뽑는 표’였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이름은 ‘기권수’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는 20대 대선을 맞아 앞선 대선의 기권수 데이터를 분석했다. 기권수는 선거인수에서 투표수를 제한 값으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의 규모를 의미한다. 선거인수 중 투표자수 비율을 의미하는 투표율과는 반대관계에 있다. 2002년 16대 대선부터 2017년 19대 대선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하는 개표현황 데이터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던 17대 대선은 직접선거로 치러진 11차례 대선 중 기권율(36.97%)이 가장 높은 선거였다. 이 전 대통령이 얻은 득표수(1149만2389표)보다 기권수(1392만664표)가 많았다. 2위였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득표수(617만4681표)는 기권수의 절반이 안됐다.
2017년 19대 대선은 4차례 선거 중 기권율(22.77%)이 가장 낮았지만, 기권수 순위는 높았다. 19대 대선 기권수(967만1802표)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득표(1342만3800표)보다는 적었지만 2위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785만2849표)보다는 많았다. 두 선거 모두 개표 이전부터 판세가 특정 후보 쪽으로 기운 선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빙의 승부였던 선거에서는 기권수 순위가 밀려나는 현상이 보인다.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던 16대 대선과 18대 대선에서 기권수는 각각 1020만6566표(기권율 29.17%), 978만6383표(24.16%)였는데 각 대선의 2위 득표자인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1144만3297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1469만2632표)보다 적었다. 16대 대선은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2%대, 18대 대선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3%대 접전을 펼쳤던 선거다.
■기권율, 높은 곳은 계속 높고 낮은 곳은 계속 낮다
기권율에서 확인되는 또다른 특징은 ‘지역 격차’다. 특히 18대 대선과 19대 대선의 기권율 지역 편차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충남과 인천은 4차례 대선에서 모두 17개 시·도 기권율 상위 5개 시·도에 포함됐다. 제주, 강원도 매 선거에서 기권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반면 영·호남은 대대로 기권율이 낮았다. 영남에서는 경북과 대구·울산이, 호남에서는 광주와 전북이 기권율이 낮은 편이었다. 똑같이 기권율이 낮은 지역에서도 각 선거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18대 대선에서는 영남의 기권율이 보다 낮았고, 19대 대선에서는 호남의 기권율이 뚜렷하게 낮았다. 각 지역의 유권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표장으로 향했다는 뜻이다.
■기권이 많은 시군구는 어디일까
경기 동두천시는 19대 대선에서 전국 시·군·구 중 가장 기권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동두천시는 18대 대선에서도 경북 울릉군에 이어 두번째로 기권율이 높았고, 17대 대선에서는 6위를 차지했다. 강원 속초시는 전국 시·군·구 중 두번째로 기권율이 높았다. 경기 포천시와 충남 당진시도 역대 선거에서 꾸준히 기권이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19대 대선에서 동두천시의 기권율 상승을 주도한 계층은 50대 남성으로 지목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19대 대선 투표율 분석 데이터를 보면 동두천시의 50대 남성 기권율은 32.34%로 부산 영도구에 이어 50대 남성의 기권율이 두번째로 높았다. 50대 여성도 충남 당진시와 태안군에 이어 전국에서 세번째로 기권율이 높게 나타났다. 두번째로 기권율이 높은 강원 속초시에서도 50대 남녀가 기권율 상위권에 속했다.
■‘역대급 사전투표율’과 ‘역대급 비호감 대선’의 갈림길에 선 20대 대선
9일 실시되는 20대 대선의 기권율은 어떻게 될까. 이번 선거의 기권율을 가늠할 수 있는 상반된 징조가 있다. ‘낮은 기권율’을 가리키는 징조는 ‘높은 사전투표율’이다.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은 36.93%로, 2014년 사전투표제도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9대 대선 사전투표율보다 10%포인트 이상 늘었다. 최종투표율도 19대 대선 기록(77.2%)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선관위 유권자 의식조사(1차)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고 답한 응답자가 83.0%로 16대 대선 이후 조사에서 가장 높았다.
‘높은 기권율’을 가리키는 징조는 ‘비호감 대선’이다. 정책·비전 대신 네거티브 공방을 중심으로 대선 정국이 이어진 탓에 투표보다 기권을 택하는 선거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선관위가 실시한 두 차례의 유권자 의식조사를 보면 비호감 기류는 특히 2030 세대에서 강한 것으로 풀이된다. 1차 조사에서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답한 19~29세 응답자는 66.4%로, 19대 대선 1차 조사에 비해 17.8%포인트 줄었다. 2차 조사에서도 20대는 13.4%포인트, 30대는 7.6%포인트씩 19대 대선 조사에 비해 적극적 투표층이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