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이 ‘소년 범죄’라는 화두를 다시 던졌다. 2017년 인천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같은 해 부산에서 벌어진 여중생 집단폭행 사건, 2018년 관악산 여고생 집단폭행 사건, 2018년 인천에서 갓 졸업한 초등학생이 같은 나이 학생들에게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 <소년심판>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극으로 끌고 와 소년범죄의 충격적 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러면서 엄벌주의와 보호주의 사이를 오가는 판사들의 고민을 비춘다.
최근 몇 년새 소년범을 엄벌에 처하라는 여론이 커졌다. 여야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이런 시류가 반영돼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현행 14세 미만인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겠다는 원칙을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촉법소년 연령을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촉법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천종호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한다고 했다. 법정에서 소년범에게 “안 돼, 안 바꿔줘. 바꿀 생각 없어. 빨리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으로 잘 알려진 천 판사는 <소년심판> 제작진에 자문을 했다. 그런 그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건 “한 번 내리면 끝이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대신 소년보호처분을 현행 최대 2년에서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촉법소년이 범죄를 저지르면 보호처분 1호에서 10호까지 받을 수 있다. 10호가 ‘장기 소년원 송치’로 가장 무거운 처분이고, 기간은 최대 2년이다.

천종호 대구지법 부장판사. 본인 제공
천 판사는 ‘회복적 사법’을 강조했다. 소년범 사건 피해자의 상처는 ‘가해자 처벌’로만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해자의 진정어린 사과’가 있을 때 치유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천 판사가 소년부에 있던 시절 가해자에게 큰 소리로 ‘진정어린 사과의 말을 외치라’고 주문한 것도 그래서다.
천 판사는 “처벌이 강화되면 가해자는 사과를 아예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예 (사과의) 다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라며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부모가 가해자에게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고 절규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가해자의 사과 없이 엄벌을 선고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반쪽짜리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천 판사는 “피해자의 권리 보호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사과, 피해자의 정신·심리적 치료 등 복지 혜택까지 세 가지 축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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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판사는 소년범에 대한 엄벌 여론에 대해 “청소년·아동이라면 순수함, 꿈을 갖고 사는 모습을 주로 떠올리는데, 그 생각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해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 같다”며 “순수할 것이라는 기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더 혐오가 커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실상을 알면 그 반작용이 누그러지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며 “우리가 이들을 ‘비행청소년’이 아니라 ‘위기청소년’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소년범은 ‘태어난 악’이 아니라 ‘길러진 악’이라는 것이다. 그가 소년재판 이야기를 담은 책 제목을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라고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천 판사는 “비행 내용과 범죄 내용만 보지 마시고, 왜 (소년범이) 거기까지 이르게 됐는지 폭넓게 시각을 넓혀주면 좋지 않을까”라며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혼자 발버둥쳐봐야 비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도움의 기회마저 정 내팽개치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