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왔습니다. 주인 됨을 입증하는 날.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입니다. 오늘(9일)의 주인공은 대선 후보들이 아닙니다. 한 표를 행사하는 ‘당신’입니다.
이번 선거 과정은 복기하는 일조차 버겁습니다. 거대 양당 후보와 가족을 둘러싼 의혹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비전·정책 경쟁은 네거티브 공세의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후보 간 차별성을 드러낼 수 있는 토론 기회는 부족했습니다.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선망’(이번 선거는 망했다)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겠지요.
당신은 그러나 ‘비호감 대선’이라 불린 우울한 선거에서도 희망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이미 36.93%가 지난 4~5일 투표를 마쳤습니다. 사전투표 사상 최고 기록입니다. 사전투표소 앞 줄은 길었지만, 기다리는 당신의 얼굴엔 기대가 비쳤습니다. 63.07%는 오늘 선택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미 누구에게 표를 던질지 마음을 정한 이도 있고, 여전히 고민 중인 이도 있을 겁니다.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겠지요. 선택은 오롯이 당신 몫입니다. 그에 따르는 책임도 당신 몫입니다.
선택의 근거는 무엇이 돼야 할까요. 첫째, 당신과 가족의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후보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투표하러 가기 전에 당신이 관심 갖는 현안에 대한 공약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자리나 성장, 주거나 돌봄 문제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산업안전, 성평등일 수도 있습니다.
둘째,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는 물론 전 지구적 흐름까지 살펴 이에 걸맞은 후보를 찾아야 합니다. 차기 대통령 앞에는 중첩된 위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신냉전이 엄습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북한은 탄도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며 긴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탄소중립 등 기후변화 대응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하다보면 차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십 보 백 보’는 같지 않습니다. 오십 보 차이가 납니다. 물론 공약만 믿을 수는 없습니다. 후보들이 과거 ‘공적 인물’로서 어떤 성과를 남겼고 어떤 실책을 했는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대선 기간 빚어진 갈등과 분열을 누가 치유할 수 있을지도 숙고해야 할 대목입니다.
내 표가 제대로 처리될지 걱정할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에서 ‘소쿠리’가 등장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모든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선관위는 이 다짐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본투표에서도 혼란이 재연됐다가는 대선의 신뢰성과 공정성에 흠결이 생기고 자칫 패자 진영에서 결과에 불복하는 빌미로 삼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민주주의 축제일입니다. 주권자 당신은 즐길 자격이 충분합니다. 축제가 열리는 투표소로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