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땀이 많은 체질이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땀이 많은 체질이니 갱년기가 되면 더 괴로우시겠어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40대 중반이니 사실 갱년기는 곧인데? 지금도 땀이 많아서 여름만 되면 땀띠로 고생인데, 땀이 더 많아진다고? 갱년기가 되면 땀이 덜 나게 호르몬 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나를 환자의 입장에 놓고서 갱년기 호르몬 치료를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재택의료센터 가정의학과 전문의
내가 의대 본과에 진학하기 직전인 2002년, 갱년기 호르몬 치료에 대한 어마어마한 연구 발표가 있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여성건강연구소에서 시행한 ‘2002년 WHI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갱년기 여성에게 젊음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시행한 호르몬 치료가 오히려 심뇌혈관 질환을 더 일으키고 유방암 위험도 높인다는 결과가 전 세계로 보도되었다. 의사고 환자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당시 호르몬 치료를 받던 여성들의 70~80% 정도가 치료를 갑자기 중단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은 컸다.
당시의 나는 속으로 ‘그것 봐!’라고 외쳤다. 갱년기는 질병이 아니라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 시기이자 인생의 한 거쳐가는 단계일 뿐인데, 그걸 질병으로 규정하고 치료하려고 하니까 이 사달이 나는 거지! 갱년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나이 듦을 교정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는 비틀린 시각이 오히려 여성들을 더 병들게 하는 실증적 사례를 찾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서 갱년기에 여성이 얼마나 자유롭고 건강할 수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생리통으로부터 해방되어 살 것 같다는 얘기에서부터 여행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임신의 두려움이 없어 성생활을 더 즐기게 되었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갱년기 문제라는 건, 갱년기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지, 실제로 갱년기 여성들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20대로서의 당시 내 결론이었다.
10년쯤 지나자 2002년 충격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세부적인 분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규모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을 여러 조건 - 나이, 호르몬 치료 시작 연령, 약제의 종류, 기저 질환 등 - 으로 나누어 분석했더니 호르몬 치료가 그렇게까지 상종 못할 치료는 아니었다는 결론이었다. 갱년기 호르몬 치료는 어떤 여성들에게 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여성들에겐 이익보다 손해가 큰 치료이기도 하다. 그러니 누구에게 필요한지, 누구에겐 필요하지 않은지 잘 골라내야 하는 것이 임상 의사와 환자 자신의 몫이라는 결론. 지금은 누구나 당연한 듯이 인정하는 결론, ‘케바케’이다.
그러나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손쉽게 인정하고 넘어가기엔 석연치 않은 게 있다. 갱년기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나는 항상 약간의 긴장을 느낀다. 갱년기라고 이름을 붙여 너무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형언할 수 없는 각종 증상 모둠 세트에 이름을 붙이니 비로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갱년기라고 불리는 게 싫다는 사람들도 있다. 너무 싸잡아 보는 것 같다는 거다. 내가 겪는 이 모든 괴로움, 불편함을 갱년기라고 한 방에 매도하는 것 같다고. 왜 각각의 몸에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으레 이 나이 여자의 몸으로 일반화하기만 하냐고. 갱년기 단어에 대한 이런 느낌도 단지 사람마다 다른 것이기만 할까?
20년이 지나 이제는 첫 연구 발표의 충격은 사라지고 케바케만 남았지만, 그때의 감각을 상기하는 게 여전히 유효하다. 나이 든 여성들에게 호르몬 치료가 무분별하게 권유되던 시대적인 맥락, 이런 연구가 기획되었던 사회적인 맥락, 그런 맥락을 느끼면서 진료할 때 조심스러운 긴장이 유지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