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데는 모두 한번 다녀와봐야지” 다시 길 오르는, 길 위의 신부

서귀포|김종목 기자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봄바람’ 시작하는 문정현 신부

“아픈 사람들끼리 모여 힘 합치고 소리 한번 내보는 수밖에”

“교인은 소외되고 억압받고 탄압받는 사람과 함께 해야”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강정 생명 평화 미사를 위한 천막성당에서 입당 성가 ‘강정아’를 부르고 있다. 노랫말 중 한 구절은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이다. 문 신부가 이 구절을 목판에 새긴 작품을 걸어뒀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강정 생명 평화 미사를 위한 천막성당에서 입당 성가 ‘강정아’를 부르고 있다. 노랫말 중 한 구절은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이다. 문 신부가 이 구절을 목판에 새긴 작품을 걸어뒀다. 김종목 기자

“아픈 사람끼리 모여보자. 소리 한번 내보자. 그거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82)가 다시 길로 나선다. 가려는 길에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봄바람’이란 이름을 붙였다. 노동·인권·생태·평화를 위한 순례다. 15일 낮 12시 제주 서귀포시 강정 해군기지 앞에서 선언식을 갖고 출발했다. 전날인 14일 서귀포시 강정동 생명평화 천막성당과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문 신부를 만났다. 그는 줄곧 ‘아픈 사람’, ‘억압받는 사람’, ‘쫓겨난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관심 두는 건 고통 받는 사람뿐이야. 이루 말할 수 없어. 1년에 2000명이 산업재해로 죽어. 이게 전쟁터지 뭐야. 예전엔 아무리 주종 관계가 있더라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식구라는 개념이 있었어. 지금은 필요 없으면 내버리는 소모품이야. 오죽하면 깔려 죽지 않게, 떨어져 죽지 않게 해달라는 거냐고. 중대재해처벌법 그게 누더기지, 말이 돼? 자본이 얼마나 센지 드러나잖아.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가 단식을 하고 그랬잖아.”

문정현 신부(왼쪽)와 이강서 신부(가운데), 동생 문규현 신부와 함께 지난 14일 천막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정 생명 평화 미사는 15일 기준 5416일째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왼쪽)와 이강서 신부(가운데), 동생 문규현 신부와 함께 지난 14일 천막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강정 생명 평화 미사는 15일 기준 5416일째다. 김종목 기자

문 신부는 ‘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한다고 했다. 제주 칼호텔 해고 노동자, 남방큰돌고래 보호운동가, 가덕도 신공항 반대 활동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월성 원자력발전소 인접 주민, 하제마을 미군공여 반대 활동가, 그리고 여성노동자 들이다.

“이 사람들이 어디 호소할 데가 없어. 서로가 아니면 의지할 데가 없어. 현장에 가보고 만나 얘기라도 좀 들어봐야 내가 더 마음이 깊어질 것 같아. 심장에 들어올 것 같아.” ‘이 사람들’은 싸움의 현장에 끝까지 ‘남은 자’들이기도 하다.

‘깊어지고, 들어온다’는 말뜻을 되물었다. 문 신부는 “만나야 이분들 마음이 내 마음에 들어오고, 애착도 더 커질 것 같다. 아픈 데는 한번 다녀봐야겠다. (코로나19 등으로) 가고 싶어도 못 간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열린 천막성당 생명평화 미사 전경. 김종목 기자

지난 14일 열린 천막성당 생명평화 미사 전경. 김종목 기자

문 신부야말로 아픈 사람이다. 2012년 4월6일 강정마을 포구 방파제에서 해양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테트라포드 방파제에서 떨어졌다. 허리뼈가 골절됐다. 팔, 다리도 다쳤다.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의 장소에 마련한 ‘십자가의 길’을 걷다 벌어진 일이다. 1975년 4월9일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이 사형당한 날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 크레인에서 추락했다. 당시 무릎뼈가 으스러졌다.

문 신부는 “골절된 허리뼈 조각 하나가 아직도 (몸속에서) 굴러다녀. 무릎이 괜찮으면 허리가, 허리가 괜찮으면 무릎이 아파”라며 웃었다. 그는 가끔 미사 도중에도 쓰러지는 일이 있다고 한다.

문 신부는 소외감과 무력감을 토로했다. “마음이 아픈 시기여서 한동안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잘 안 했어요.” 그를 아프게 한 건,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배신감 같은 것이었다. “옛 동지들도 다 떠나고 배신하고 그러잖아.” 문 신부는 한때 동지들이 김영삼 정권 때 3분의 1, 김대중 정권 때 3분의 1, 노무현 정권 때 3분의 1이 각각 운동을 떠나 정권에 몸담았다고 했다. “권력 쪽으로 붙어버려. 지금도 마찬가지야. 이게 정치꾼들이지. 무슨 고통받는 사람 편에 선다고….” 그가 이어 말한 건 ‘소임과 책무’에 관한 것이다.

“내가 몸담은 교회가 사회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잖아요. 한국천주교회가 (강정 해군기지 반대 미사·투쟁 등에) 반대를 안 하는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아쉬움도 있죠.” 이어 말했다.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만나서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어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교인은 소외된 사람, 억압 받는 사람, 탄압 받는 사람들 아픔에 함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거 예수님 말씀이야. 그런데 돈 만들어서 땅이나 사고 교회 짓는 데는 열성이지만 (이런 아픔은) 외면하고…. 도대체 예수님 이름 팔아서 뭔 기도를 할 것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강정 생명평화 미사 장소인 천막성당에서 진행된 미사 중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강정 생명평화 미사 장소인 천막성당에서 진행된 미사 중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종목 기자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문 신부의 길은 투쟁과 저항, 연대의 길로 일관했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뒤 그 길에 나섰다. 당시엔 “정치의식이 없었다. 어디 주교님을 잡아가냐는 거였다.” 이후 인혁당 관련자 사형집행 등을 거치며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식이 커졌다. 그는 1976년 ‘3·1 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됐다.

문 신부는 45년 이어진 길을 들려줬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치며 “정치적으로 탄압받는 사람들, 노동자·농민들에 대한 관심이 커져 여기저기 찾아다녔는데, 평생 다니게 된 것”이라고 했다. 매향리 사격장, 대추리 미군기지 현장에서 싸운 이야기로 이어졌다. 대추리 문제는 “지금도 용납할 수가 없다”고 했다. “(주민들이) 왜정 때 쫓겨나, 6·25 후에 쫓겨나, 세 번째 쫓겨난 거거든. 갯벌까지 쫓겨나가 일군 터가 거기야. 그 조그만 동네에 경찰 1만2000명이 들어왔어. 게다가 이라크 파병까지 하네. 그 무렵 온전히 길에서 살았지.”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낮 제주 강정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선언식을 진행하고 있다. 기지평화네트워크·기후위기비상행동·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도 참여했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 등 단체 회원들이 15일 낮 제주 강정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선언식을 진행하고 있다. 기지평화네트워크·기후위기비상행동·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차별금지법제정연대 회원들도 참여했다. 김종목 기자

문 신부는 대추리에 끝까지 남아 있다 경찰에게 들려 나왔다. 이후 세상은 문 신부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 자신도 가만있지 않았다. 용산참사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 살다시피 했다. “(주민들이 국가 폭력 때문에) 땅 딛고 살 수가 없었던 거지. 그러니까 망루를 세운 거야. 다섯 명이 죽고 경찰까지 죽고…. 이럴 수가 없어요. 개발이 무서운 것이란 게 그냥 극적으로 드러난 거 아닙니까. 거기서 11개월 싸웠지.” 1974년 인혁당 사건부터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사건까지 문 신부의 발길이 닿지 않은 현장이 없다.

문정현 신부가 15일 낮 제주 강정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열린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중 ‘여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가 15일 낮 제주 강정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열린 ‘다른 세상을 만나는 40일 순례’ 중 ‘여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목 기자

문 신부가 가장 오래 싸운 곳은 강정이다. 강정에 머문 지 만 12년에 가깝다. 14일 오전 문 신부가 ‘생명평화 미사’를 진행하는 천막성당을 찾았다. 해군기지에서 1㎞가량 떨어진 곳이다. 문 신부는 거의 매일 같은 자리에서 미사를 올린다. 이날은 미사 5415일째였다. 문 신부가 입당 성가로 부른 게 ‘강정아’다. 노랫말 중 한 구절은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에 평화가 시작되리라’이다. 문 신부가 이 구절을 목판에 새긴 작품이 십자가 아래 걸려 있었다.

“이게(강정 해군기지) 노무현 정권 때 시작된 거 아니에요. 대추리도 똑같고요. 몇몇 사람들을 매수해서 기립박수로 결정한 거죠. 이걸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했다. 이게 이제 마을 주민의 의견이다’라고 사기 치고. 그 다음부터는 경찰 폭력이야. 2011년 8월부터 2012년 9월까지 2만 명 경찰이 투입됐어. 체포된 사람만 697명, 사법처리된 사람이 700명이 넘고 징역살이 한 사람이 60명이야. 삼성이 공사하는 데 손해 봤다고 구상권 청구한 금액이 34억5000만원이야. 2018년 관함식 때 찬성하는 사람들만 모여서 통과시켰잖아. 마을이 (해군기지와 관함식을) 인정한 것처럼….”

문 신부는 진보·촛불을 표방한 정권에서 이뤄진 퇴행에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였다. “경항공모함이다 뭐다 해서 군비만 수백조야. 국방비를 줄여야 되는데, (문재인 정권이) 군비를 늘리니…. 작전권도 없는데 군비 증강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중국, 북한 자극시키는 일밖에 더 있냐고.”

문 신부는 지난해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강정을 찾았을 때 “한 명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이제 진리를 이야기하면 언제가는 승리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에선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이거 뭐 이미 다 지었잖아요’라고 해.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사라지면 진실은 감춰지는 거 아니냐. 진실이 밝혀지면 해군기지는 존재할 수 없어. 진실이 드러나면 구럼비는 다시 일어나는 거야. 그래서 못 떠난다 이 얘기지.”

문정현 신부가 15일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작업실에서 ‘강정, 제주해군기지, 주민의 피눈물’라고 새긴 글귀를 파고 있다. 문 신부는 용산참사 싸움 뒤 허탈함 때문에 서각을 배웠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가 15일 프란치스코 평화센터 작업실에서 ‘강정, 제주해군기지, 주민의 피눈물’라고 새긴 글귀를 파고 있다. 문 신부는 용산참사 싸움 뒤 허탈함 때문에 서각을 배웠다고 했다. 김종목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한·미·일 3자 협력 강화’ 공약이 평화에 어떻게 작용할지 물었다. “문재인이란 사람이 보수냐, 진보냐? 아무것도 아니야. 문재인이나,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랑 똑같애. 미국과 자본 앞에서는 똑같아. 대선 때 군사시설 때문에 피해 본 주민들 문제, 비정규직 문제, 차별 문제 (양쪽에서) 한 마디도 안 나와. 똑같아.” 문 신부는 15일 순례길 출발 선언식 때도 “차별금지법이 뭐가 문제야. 20년 동안 못해. 여고 야고, 진보고 보수고 없다”라고 말했다.

제주도, 가덕도 등지의 공항 건설 문제를 두고도 “결국 미군 활주로 하나 더 만드는 거야. 이것이 한 2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문 신부는 서울에 들르면 영등포구 신길동에 문을 연 비정규직노동자쉼터 ‘꿀잠’에 간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공공 목적의 집이야. 거기도 용산처럼 개발지역으로 묶여서 1인 시위하고 그러고 있어.” 문 신부는 “이 자본이, 개발론자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지. 아마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우리도 만만치 않지”라고 말했다.

왜 이 험난한 길에 살았는지, 왜 떠나지 않는지, ‘원로신부’로 편히 살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순교 정신”이라고 했다. 문 신부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가 ‘경향잡지’를 애독했다고 한다. “항상 순교자전을 실었어요. 그걸 읽고 훌쩍거리며 울고…. 성당 가면 신부님들도 매번 순교자들 얘기를 했어. 어려서부터 순교자한테 배운 신앙심이 밴 것 같아.”

문 신부는 이번 순례길을 순교 길로 여기는 듯했다. 건강과 나이 때문에 마지막으로 나서는 길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래도 참 기질은 있어, 기를 쓰고 좇아다녀야지. 그것도 한계가 있겠지. 한계가 있으면 끝나는 거지.”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진행한 인터뷰 중 밝게 웃고 있다. 김종목 기자

문정현 신부가 지난 14일 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진행한 인터뷰 중 밝게 웃고 있다.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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