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청와대에서 독대한다. 관심의 초점은 전직 대통령 이명박씨 사면 논의다. 윤 당선인 측이 사면 요청을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친이명박계’ 출신의 윤 당선인 측근들도 앞다퉈 이씨 사면론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국민통합’이다. 그러나 천문학적 횡령·뇌물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전직 대통령의 사면은 국민통합을 촉진하기보다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이씨는 다스 회삿돈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소송비를 삼성 측에 대납하게 한 혐의로 2020년 징역 17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그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시작된 다스 실소유주 의혹을 줄곧 부인했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온 나라를 기망했으나 13년 만에 실소유주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사면을 대가로, 자신과 다스가 부담해야 할 미국 소송비 수십억원을 대신 내도록 했다. 대법원 판결이 난 뒤에도 혐의를 부인하며 “법치가 무너졌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2018년 이씨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진두지휘한 당사자이다. 이제 와서 반성도 사죄도 없는 이씨를 사면하자고 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나 마찬가지다. 윤 당선인은 당선인사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부정부패는 내편 네편 가릴 것 없이 국민 편에서 엄단하고, 우리 국민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는 법치의 원칙을 확고하게 지켜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당선증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릴 셈인가.
문 대통령이 지난해 말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사면했을 때, 문 대통령 스스로 견지해온 원칙을 허물었다는 비판이 많았다. 앞서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 방침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당시 청와대는 이씨에 대해선 사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하며 여론을 달랬다. 사익 추구 여부 등을 근거로 “(이·박씨) 두 분의 케이스는 많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이 이씨를 사면할 경우, 원칙을 또다시 허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정면으로 뒤집는 일이 될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친문재인계 핵심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까지 포함하는 ‘패키지 사면’을 거론하는 모양이다. 만약 그런 사면을 한다면, 이명박씨가 퇴임 직전 강행했던 ‘천신일·최시중 사면’의 재판이라는 비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분열의 씨앗이 될 것임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