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4일 여성공천할당제를 지역구 의석에도 의무화하되, 공천 시 특정 성별이 전체 후보의 60%를 넘지 않게 하라고 정치권에 권고했다.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과소 대표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다. 이날 인권위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성평등한 정치 대표성 확보를 위한 권고의 건’(성평등 권고의 건)을 통과시켰다. 20대 대선에서 젠더 이슈가 급부상하고, 청년여성의 정치참여가 가속화한 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공직선거법은 기초의회·광역의회·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서만 50%를 여성으로 하는 여성할당제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당선인은 광역의회에서 19.4%, 기초의회에서 30.8%에 그쳤다. 21대 국회의원 중 여성은 19%에 불과한데, 세계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의원 선거 후보자 추천 시 지역구 의석에서도 여성 공천할당제 의무화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인권위는 또 국회의장과 각 정당 대표에게 후보공천할당제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도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성평등 권고의 건’은 최근 인권위 상임위원회에 두 차례 상정됐으나 의결되지 못한 채 전원위로 넘어와 9 대 2로 가결됐다. 현재 국회에서는 지역구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후보자 추천 때 성별 할당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인권위 권고는 이들 법안의 논의에 속도를 붙일 가능성이 크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재확인하면서 ‘지역·성별 안배’ 문제를 놓고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해서는 국민통합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각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한다는 기준을 세운 바 있는데, 이 같은 인사 원칙을 염두에 두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균형인사를 자리 나눠먹기식으로 깎아내리는 것은 단견이다. 공동체를 대표하는 얼굴들은 그 공동체의 구성과 ‘닮아야’ 한다. 성별·세대·지역 등 다양한 요소별로 대표자의 구성비가 전체 시민의 구성비에 근접할 때, 그래서 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때, 시민은 대표자를 더 신뢰하게 된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인권위 권고를 적극 수용해 여성 정치인에게 평등한 기회의 토양을 제공해야 한다. 여성 정치인의 참여 확대를 통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인권이 더 신장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