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16일 오찬 회동이 갑자기 연기됐다. 대선 후 대통령과 당선인의 공지된 만남이 불과 예정 시간 4시간 전에 순연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신구 권력 간 충돌 기류에 원활한 정권 인수인계와 협조를 기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측은 “실무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며 구체적 연기 사유에 대해 함구했다. 그러나 양측 간 이견을 보이는 현안은 쌓여가고 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 간 의제 조율이 순조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한국은행 총재와 몇몇 공직 인사를 두고 벌어진 기싸움이 단적인 예이다. 지난 15일 “꼭 필요한 인사는 협의해 달라”는 윤 당선인 측 요구에 청와대는 “임기 내 인사권 행사는 당연하다”고 맞섰다. 16일엔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이 “정치적으로 임명된 직원들은 스스로 거취를 생각하라”고 가세했다. 정권교체기마다 있어온 현재·미래 권력 간 인사 갈등이 재연된 셈이다.
윤 당선인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 건의’를 예고한 것도 회동 연기 사유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고 부정적 여론이 높은 사면을 회동 전부터 윤 당선인이 압박한 모양새가 됐고, 문 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의제로 삼을지 결정될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윤 당선인 측이 민정수석실 폐지 이유로 “뒷조사와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 측은 “현 정부에서 없었던 일”이라고 불쾌감을 표했다. 양측 모두 이런 갈등이 국민통합이나 권력 이양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 힘겨루기를 자제해야 한다. 특히 새 권력은 점령군처럼 비치지 않는지 냉철히 돌아봐야 한다.
이번 회동 연기는 덕담하며 현안을 논의하려던 문 대통령과 의제를 설정해 성과를 내려는 윤 당선인의 시각차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인이 만나 6개항을 합의한 것 외에 역대 대통령·당선인 회동은 상견례 형식이 많았다. 차제에 임기 말 인사는 차기 정부로 넘기거나 공직을 몇개 등급으로 나눠 다르게 접근하는 식으로 제도화해 갈등을 줄일 필요도 있다.
코로나19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내외 난제가 산적해 있다. 여야를 떠나 한 치의 국정공백 없이 대처해야 할 사안들이다. 대선이 초박빙으로 끝난 터라 권력 이양이 순탄할지 시민들이 주목하고 있다. 역지사지하고 상호존중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이 속히 조율돼 협치와 소통의 문을 열기 바란다.